[Y인터뷰] 박동진 대구시 야구소프트볼협회 초대회장

  • 명민준 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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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18   |  발행일 2017-02-18 제22면   |  수정 2017-02-18
“방천야구장 관리 위탁받으면 사회인야구 경기장 걱정 덜어줄 수 있어”
20170218
지난 14일 대구 시민야구장에서 박동진 대구시야구소프트볼협회장이 협회 운영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 회장은 초대회장으로서 앞으로 시민야구장을 엘리트체육인과 생활체육인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통합의 장으로 만들어나가겠다고 밝혔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각종 스포츠 종목이 국내로 유입된 이후 엘리트체육(이른바 운동부 출신의 전문체육인들이 뛰는 무대)과 생활체육(일반인들이 취미생활을 위해 즐기는 수준의 무대)은 각각 분리돼 운영돼 왔다. 전문 운동선수와 동호인의 경계는 그만큼 견고했다.

하지만 스포츠 선진국에선 일찌감치 ‘통합운영(엘리트체육+생활체육)’을 추구하고 있다. 올림픽 등의 국제 메이저 스포츠대회에서 일본인 ‘공무원 마라토너’나 미국인 ‘목사 복서’ 등이 출전해 선전을 펼친 것은 통합운영의 긍정적인 예다.

국내 체육계도 이같은 스포츠 선진국의 사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시작했고, 최근 몇년 전부터는 통합운영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체육계는 단계적인 절차를 밟아 지난해부터 통합운영에 돌입했다.


작년 12월부터 통합 단체 회장 맡아
대구 야구발전 위해 일할 임원 구성
통합 마찰은 없었지만 예산이 문제
스폰서 구하기 위해 지역 곳곳 누벼

2010년부터 협회 전무로 활동하면서
야구인맥 동원 전국대회 유치에 노력
앞으로도 저변 확대를 위한 행사 개최
돈 문제 해결된다면 장학사업도 계획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인 야구도 마찬가지다. 지역 야구계는 엘리트체육계와 생활체육계를 통합해 지난해 말 대구시야구소프트볼협회(야구협회, 소프트볼협회, 생활체육야구연합회)를 공식 출범했다. 통합과정에서 수장도 바뀌었다. 지난해 12월 김종만 전 대구시야구협회장이 12년(2004~2016년)간의 재임기간을 끝으로 물러났고, 통합단체인 대구시야구소프트볼협회의 초대 회장으로 박동진 회장(62)이 선출됐다.

어느 종목이든 통합과정은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십년간 분리운영돼 왔던 만큼, 엘리트체육계와 생활체육계는 아직도 통합단체 안에서 사소한 문제로 대립각을 세우기도 한다. 지난 14일 어깨에 짊어진 짐이 결코 가볍지 않은 박 회장을 만났다.

▶갓 통합된 단체의 초대회장인 만큼 많이 바쁘다고 들었다.

“(미소 지으며)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초 선출된 이후에도 최근까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서 임원단 구성을 마쳤다. 사실 체육단체에서 하는 일은 거의 봉사라고 보면 된다. 시간과 물질적인 부분을 할애해서 대구 야구의 발전을 위해 함께 일해 줄 임원들을 찾으려고 바빴던 것이다. 다행히 지역에는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 덕분에 임기 동안 의욕을 잃지 않고 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전국 각지에서 통합과정 중에 파생된 불협화음이 들려온다. 대구 야구계는 어떤가.

“잡음이 거의 없었고, 앞으로도 불협화음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 자신한다. 기본적으로 생활체육인들과 엘리트체육인들이 교감과 소통을 잘한다. 서로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또 생활체육인들이 엘리트야구인들로부터 야구지식을 얻기도 하면서 서로 긍정적인 소통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렇지만 협회 입장에서는 앞으로 단 1%의 불화라도 생기지 않도록 잘 조율해 나가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야구와 연을 맺은 계기는.

“시골출신이라서 야구의 야자도 모르다가 야구부가 있는 대구 성광중에 입학하면서 야구에 눈을 떴다. 야구부원들이 공을 주고받는 모습이 신기해서 운동장에서 하루 종일 그 모습만 지켜봤다. 나도 못할 거 없다는 생각에 그길로 야구부로 찾아가 테스트를 받았고, 소질이 보였는지 입단시켜 주더라. 이후 고교야구를 거쳐 실업야구팀인 기업은행팀에 입단했다. 포수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김성근 당시 감독이 나를 스카우트했다. 주전급 실력은 아니어서 주로 팀의 살림살이를 도맡았고 김성근 감독을 보좌하기도 했다(웃음).”

▶야구인으로는 성공하지 못한 것인가.

“기회를 잡지 못한 것도 있었지만 기업은행팀이 입단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해체됐다. 나도 야구선수로서 성공 가능성을 보지 못했고, 그래서 기업은행에 남아 평사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야구만 하던 사람이라서 은행업무가 쉽지 않았다. 꼬박 1년 동안 주산사용법을 익혔고, 그런데로 일을 하다보니 회사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7~8년차쯤에 대출관리업무를 맡았는데 그 과정에서 고철업의 장래성을 알게 됐고, 퇴사이후 현재까지 고철사업을 하고 있다.”

▶야구협회에는 어떻게 발을 들이게 됐는가.

“사업을 시작하면서 사실상 야구와 인연이 끝난 듯했다. 사업이 제법 번창했을 즈음인 2010년 한화 이글스의 권영호(한화 재활담당 코치)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권 선배는 야구선수시절 인연을 맺었다. 권 선배가 ‘대구시야구협회에서 전무이사를 찾고 있다고 들었다. 니가 해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다. 전무이사는 국내에 있는 야구단체와 교류하면서 각종 사안을 논의해야 하는 자리다. 선수출신에다가 야구인맥이 꽤 있는 편이고, 안정적인 사업체도 운영하고 있는 나를 적임자로 본 것 같다. 부담스러웠지만, 어릴 적에 돈이 없어서 제대로 야구를 못했던 친구들이나 후배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도움을 주기 위해 야구협회 활동에 뛰어들었다.”

▶2010년 전무이사로 입회한 이후 7년째인 2016년에 통합회장에 올랐다. 과정이 궁금하다.

“전무이사로 활동하면서 나름대로 야구계 인맥을 총동원해서 협회 일을 도왔다. 주로 전국권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다. 대구에서 전국권대회를 치르면, 지역사회에서 야구 저변확대가 이뤄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후 지난해 말 단체 통합논의가 이뤄졌고, 김종만 전 회장은 물러나려 했다. 김 전 회장이 그 과정에서 나를 추천한 것으로 안다. 아무래도 통합되는 시기인 만큼 잡다한 트러블이 생길 소지가 있었고, 야구를 잘 아는 사람이 컨트롤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긴 것 같다. 솔직히 통합단체의 초대 회장직은 부담스러웠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나를 원하는 분위기였고,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나도 자신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번 해보겠다는 의지로 회장직에 올랐다.”

▶현재 협회의 문제점이 있다면.

“언제나 예산문제가 큰 고민거리다. 아까 말했다시피 통합과정에서 사람들끼리의 충돌은 없었다. 다만 예산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돈이 없으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인 야구 저변확대를 이룰 수 없다. 저변확대를 위해 행사를 열고 싶어도 돈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회장 취임 이후 바빴던 이유중 하나가 이 문제다. 스폰서를 구하기 위해서 지역 곳곳을 누빈 것 같다.”

▶회장으로서 가진 장·단기 목표가 궁금하다.

“일단 단기적 목표는 4월쯤 오픈하는 방천야구장을 대구시로부터 위탁받아서 관리하는 것이다. 협회입장에서 대구시로부터 위탁받아 야구장을 운영할 수 있으면, 사회인 야구인들의 고민인 구장 사용 걱정을 덜어줄 수 있다. 야구 동호인들은 늘 야구하는 공간을 찾지못해 어려움을 겪는 편이다. 또 예산문제가 해결된다면 형편이 넉넉지 못해 제대로 운동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장학사업을 펼치고 싶다. 통합과정에서 합쳐진 소프트볼 종목의 저변 확대도 해내고 싶다. 소프트볼은 여성이나 어린이들도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서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명민준기자 minjun@yeongnam.com

▨박동진 초대회장 약력

△현 금강소재산업 대표 △2010~2015년 대구시야구협회 전무이사 △2016년 1∼12월 대구시야구협회 부회장 △2016년 12월 대구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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