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364일 모두 당신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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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18   |  발행일 2017-05-18 제29면   |  수정 2017-05-18
[기고] 364일 모두 당신의 날들
강미아 안동대 환경공학과 교수

2017년 5월의 달력은 참 복잡하다. 1일 첫 월요일부터 근로자들이 쉴 수 있는 근로자의 날이었다. 하루 출근하고 3일은 부처님오신날로 공휴일, 5일은 어린이날, 8일은 어버이날, 15일은 스승의 날이었으며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5월처럼 무슨 날에 또 무슨 날로 달력이 채워진다면 이 세상에 축복받지 않을 이 누가 있겠나 싶을 정도다. 이렇게 무슨 날, 무슨 날이 많은 5월은 축하하고 감사드릴 일들이 많아 주머니가 쉬이 비게 되는 달이기도 하다. 주머니가 비어 있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형편이 못 되어도, 나 아닌 누군가를 위하고 축하하는 것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는 마음만은 진정한 자신의 몫이어야겠다.

이번 5월은 때아닌 대통령선거일까지 생겨 빨간날이 하루 더 늘었다. 황금연휴로 즐길 수 있는 이들에겐 그야말로 생애 선물이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근로자의 날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일꾼이다. 그래서 1·2·4일 모두 평소와 같이 출근해 할 일을 했고, 부처님 덕분에 밀린 원고도 쓸 수 있어 감사했고, 어린이 날에 사전투표를 했다. 어버이날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안녕을 여쭙는 것으로 하고 여느 때와 같이 일을 했다.

그러고 보니 갑자기 휴일이 돼버린 9일 대통령선거일에는 그간 쌓였던 집안 일들을 하고 자유 시간을 가졌다. 온전히 하루 전부를 가사노동과 약간의 자유로운 여유로 사용할 수 있었던 날이, 그토록 온 나라를 어지럽히고 뒤흔들었던 결과로 얻은 조기 대통령선거일이었다니 왠지 씁쓸했다. 덕분에 대청소를 할 수 있어 씁쓸한 마음을 쓸어낼 수 있었다는 합리화과정을 거치며 냉정을 되찾아야만 했다.

15일은 스승의 날이었다. 스승의 날은 1963년 ‘은사의 날’로 시작, 이듬해 ‘스승의 날’로 바뀌었다. 1965년부터 스승의 날은 세종대왕의 탄신일인 15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니 부처님오신날처럼 스승의 날은 세종대왕님이 오신 날이다. 우리나라 사람 누구나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세종대왕님 오신 날에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이번 스승의 날에도 어김없이 우리 학과 학부생들은 수업을 마친 6시에 교수들을 초대했다. 그리고 150명이 채 안 되는 전원이 ‘스승의 날 노래’를 불러주었다. 매년 약간씩의 변화를 느꼈지만 올해는 상당히 다름을 알아버렸다. 존경심에서 우러나오는 경건함이 없어지고 앉아서 키득대며 낄낄대고 가사도 틀리게 대충 부른다. 그 앞에 마주하고 앉아 있기가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모른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스승의 날 노래’에서처럼 그들은 하늘같은 스승의 은혜를 받은 이들도 아니며, 그들 앞의 스승은 앞으로 그들이 우러러볼 대상이 아닐 수도 있다.

설령 그들이 스승을 우러러본다고 하더라도 은혜가 높아질 가능성도 거의 없다. 그래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의무감을 느끼는지 노래로 마무리해 주었다. 이마저도 감사해야 할 일인가 싶어 다시 한 번 5월의 씁쓸함을 체험했다. 스승의 자리에서 한 말씀씩 하라고 해 나도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오늘 스승의 날이네요. 여러분은 일년에 한 번 스승의 날로 사시죠?” 했더니 이구동성으로 “예”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오늘 하루만 빼고, 364일 제자의 날로 삽니다”라고 했더니 150여명의 제자들은 눈만 깜빡이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여러 날이 오고 가지만, 청춘들의 일상은 다시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귀한 시간이라는 것은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들은 모두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제자들이 그들의 삶을 위해 지식을 쌓고 기술을 축적하는 동안 우연히 경험하게 되는 그 어떤 것들도 그들을 위한 것이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내 말뜻을 알아채기는 쉽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들, 우리 제자들의 날이 아닌 때는 없다. 청춘들 앞의 모든 시간은 온전히 그들의 자산이니까 말이다. 틀린 노랫말조차 부끄러워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나의 제자들이다. 그래서 364일 제자들을 사랑한다. 강미아 안동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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