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레밍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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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29   |  발행일 2017-07-29 제23면   |  수정 2017-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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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수 칼럼니스트

레밍(Lemming)은 들쥐다. 조금 어렵게 말하면, 설치목 비단털쥐과에 속한 설치류를 말한다. ‘나그네쥐’라고 불리기도 한다. 주로 북극과 가까운 툰드라 지역에 서식을 한다. 여러 종류가 있지만 ‘노르웨이 레밍’이 가장 대표적이다. 짧은 다리와 작은 귀에다 여느 설치류처럼 강한 앞니를 가지고 있다. 초식성(草食性)으로 여름 내내 여러 차례 번식하며, 불과 20일 정도의 짧은 임신기간에 최대 9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레밍은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서너 해마다 폭발적으로 개체 수가 늘어난다. 그 수를 감당하지 못할 쯤에 이동을 하다가 절벽을 만나면 우두머리 쥐를 따라 우르르 사정없이 바다로 뛰어든다. 거의 집단자살 수준이다. 디즈니 영화 ‘하얀 광야’에 레밍의 무리가 바다에 뛰어드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현상 때문에 맹목적인 집단 심리를 설명할 때, 레밍의 예시를 자주 든다. 또한 뚜렷한 주관 없이 다른 사람을 따라가는 편승(便乘) 효과를 ‘레밍 신드롬(Lemming syndrome)’이라 부른다.

레밍의 집단자살은 여러 가지 설(說)이 있다. 자기장(磁氣場)의 이상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먹이부족으로 인한 진짜 자살이라는 설도 있다. 프랑스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주장이 재미있다. 개체 수가 늘면 레밍은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한다. 그런데 지각변동으로 땅이 갈라져 절벽이 생겼지만, 레밍의 유전자 지도는 초기상태를 유지하여 ‘조상(祖上)의 길’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아무리 베르베르지만 이건 너무 황당한 얘기다.

레밍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1980년 ‘서울의 봄’이 끝나갈 무렵이다.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었던 존 위컴 대장이 LA타임스와 AP통신과의 합동 기자회견에서 전두환씨가 한국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마치 레밍 떼처럼 줄을 지어 추종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민주주의를 실시할 준비가 덜 되었다”는 말도 했다. “전두환씨에 대한 역(逆)쿠데타 가능성이 없다”는 그의 발언 속내와 상관없이, 이 인터뷰는 우리 국민의 속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한국인이 들쥐라니!

하지만 한국인들에게 정말 ‘레밍 신드롬’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늘 대열(隊列)을 이루고 그 대열에서 이탈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또한 같은 시기에 같은 취향으로 곧잘 통합된다. 개봉 영화가 하나 ‘떴다’하면 너도나도 뒤질세라 달려가 천만 관객 수를 채운다. 성형수술을 통해 모든 젊은 여성들이 하나의 얼굴로 변신 중이다. 요즘 유행을 타고 있는 ‘먹방’ 열풍은 또 어떤가. 그러고 보니 ‘붉은 악마’ 시절에도 해외 친구들로부터 레밍 얘기를 들은 것 같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말이란 해야 할 때가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 최근 김학철 충북도의원이 국민을 레밍에 빗대어 막말을 했다가 자유한국당으로부터 제명을 당하는 등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는 지난 주 쏟아진 폭우 피해를 보고도 해외연수를 떠나 도민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아왔다. 해명이랍시고 하는 말이 “세월호 때도 그렇고 국민들이 레밍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집단 행동하는 설치류 있잖아요” 였다. 그러잖아도 지난해 개·돼지 소리를 들었던 국민이다. 분노의 사퇴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요즘은 외유를 나갈 때 국회의원이건 지방의원이건 웬만큼은 조심을 한다. 그런데 이 양반은 엄청 다혈질인가 싶다. “만만한 게 지방의원이냐?”며 되레 큰 소리를 친다. 전력(前歷)을 보니 ‘블록버스터’ 급의 막말이 이미 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막말은 한 사람만으로 족하다.임성수 s018@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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