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성형 시대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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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23   |  발행일 2017-09-23 제23면   |  수정 2017-09-23

기업들의 채용시즌이 다가왔다. 직원 채용 면접관의 자리에 앉아 본 이는 알게 된다. 1차 서류심사로 거른 뒤 다시 간추려진 면접 대상자들은 학력 수준이나 스펙·경력이 엇비슷하다. 그렇기에 ‘해당 직무에 적합한 인물을 어떻게 제대로 선별해 내느냐’ 하는 공통적인 고민에 빠진다. 다들 씩씩한 어조로 ‘조직의 발전을 위해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겠다’고 외친다. 대다수 과대 포장된 데다 얼굴까지 위장한 모습이다. 지원자의 감춰진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고, 평소 행실을 알지 못하면서 옥석(玉石)을 가리기란 쉽지 않다. 연출된 인상과 그럴듯한 언변에 휘둘려 자칫 돌멩이를 옥으로 판단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될지 모른다. 기업 인사담당자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표정과 관련된 교언영색(巧言令色)이라는 표현이 생각난다. 상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번지르르하게 발라맞추는 말과 알랑거리는 낯빛’이라는 뜻이다. 지원자의 포장술·위장술에 속아 뽑고 나서 나중에 ‘잘못 뽑았다’고 후회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이유다. 짧은 시간 면접으로 지원자의 진면목을 캐치해 내지 못하는 면접관의 한계 때문이다.

정부가 공공기관에 대해 ‘블라인드 채용’을 최근 시작했다. 혈연·지연·학연에 의한 채용을 막기 위해 출신 지역과 출신 대학교와 같은 특정 요건을 가린 채 면접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면접관들은 유력인사와의 관계나 특정학교, 특정지역과 관련된 질문을 일절 할 수 없다. 철저하게 직무 전문성과 창의성, 발전 가능성 등을 캐물어 검증해야 한다. 면접 서류에 얼굴 사진도 못 붙이도록 돼 있어 면접관은 면접장에서 지원자와 마주해야 당사자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취지와 당위성이야 백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 블라인드 채용도 문제가 없는 게 아니다. 지원자들이 얼굴 성형을 하듯이 면접학원 등을 통해 표정도 성형하기 때문이다. 학원에서는 밝은 표정 짓기·발성 연습·돌발 질문 대처법 등 다양한 면접 프로그램으로 입사 지망생들을 불러들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훈련과 연습을 통해 면접관들이 좋아할 표정과 자세를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학원에도 못 가고, 표정 성형을 못 해서 면접에서 손해 보는 지원자들은 어쩔 것인가. 오로지 면접관의 혜안만 기대할 뿐인가. 표정까지 성형하는 시대, 우울한 문명의 그늘이다.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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