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패럴림픽과 대한민국 대통령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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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14   |  발행일 2018-03-14 제30면   |  수정 2018-03-14
세계적관심 ‘평등 올림픽’
평창 패럴림픽 한중간에
대회유치 이 전 대통령 소환
검찰의 의도와 무관하게
대한민국 국격에는 흠집
[동대구로에서] 패럴림픽과 대한민국 대통령

오늘(14일)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소환 조사가 이뤄지는 날이다. 12명의 대한민국 대통령 중 노태우·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네 번째 피의자 신분의 검찰 소환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정치탄압’이라며 출석을 거부, 결국 긴급체포돼 교도소에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공교롭게 오늘은 지난 9일 개막한 평창 패럴림픽(Paralympic)이 정확히 반환점을 도는 날이다. 패럴림픽은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 올림픽 개최국에서 경기를 갖는 신체장애인들의 국제경기대회로, 올림픽 종료 후 2주일 내에 10일간 개최된다. 패럴림픽의 패러(Para)는 ‘나란히 함께 간다’는 패럴렐(Parallel)을 뜻한다. 평등의 올림픽이란 말이다.

심야시간에 일부 종목 경기 하이라이트만 녹화중계로 보여주는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과 미국에서는 패럴림픽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개인의 신체적 특성에 따라 경기력이 좌우되는 일반 스포츠 경기와 비교해 장애를 가진 선수들이 같은 조건에서 실력을 겨루는 패럴림픽이야말로 스포츠 정신에 입각한 진정한 올림픽이라는 의미다.

국내에선 개최국임에도 불구하고 공영방송인 KBS조차도 10일간의 경기를 녹화 포함 22시간 중계하는 게 고작이지만 일본만 해도 최소 62시간, 독일은 65시간 전부 생중계만 한다.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는 생중계만 100시간에 가깝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내 방송사들이 평창 패럴림픽 경기 중계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을 살펴봐달라고 관계자들에게 당부할 정도로 우리나라에선 관심이 낮다.

그래서인가. 검찰도 대한민국에서 패럴림픽이 개최되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은 듯하다. 하여튼 4년에 한 번 개최되는 동계 패럴림픽 기간 한중간에 개최국의 전직 대통령이 검찰 포토라인에 서는 장면이 전 세계로 타전되게 된 셈이다. 이 전 대통령의 소환에 대해 세계적인 이목을 끌기 위한 검찰의 정략이었을까. 전자든 후자든 검찰의 선택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1년 가까이 끈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조사가 시각을 다툴 정도로 급한 사안은 아니기 때문이다.

신체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면서 남 녀, 노 소, 장애인 비(非)신체장애인, 흑인 백인, 남한 북한을 넘어 모두가 ‘평등’함을 세상에 알리는 범(汎)세계적인 행사 평창 패럴림픽의 의미마저 무색게 하는 검찰의 이 전 대통령 소환 시기 결정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평창 올림픽·패럴림픽은 2011년 7월 이 전 대통령 때 유치에 성공했다.

2012년 8월 런던 패럴림픽 개막식에 깜짝 출연한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다르고 어떠한 표준도 없지만 공통적으로 모든 인간은 인간 정신을 공유하고 있다. 패럴림픽은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라고.

뇌물수수, 직권남용, 횡령 등 검찰이 내세우는 혐의만 20가지가 넘는 이 전 대통령이 성실히 조사를 받고, 죄가 있다면 응당한 처벌을 받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굳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동계 패럴림픽 기간, 그것도 한중간에 전직 대한민국 대통령을 검찰 포토라인에 세워 세계적인 이목을 받게 할 필요가 있었을까.

1년 전 지난해 3월21일 박근혜 전 대통령, 2009년 4월30일 노무현 전 대통령, 1995년 11월1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되면서 포토라인에 섰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95년 12월3일 검찰에 긴급체포 됐다.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다. 되풀이되는 전직 대통령의 검찰 조사는 22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형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조사 이후 23일 만인 2009년 5월23일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2월 1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국민통합은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숙제”라고 강조했고, 오늘 검찰에 소환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은 5년 뒤 2008년 2월 취임식에서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꿈을 갖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성수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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