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함께 문익환 목사 뜻 품고 살아갔으면”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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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27   |  발행일 2018-04-27 제21면   |  수정 2018-04-27
문 목사 탄생 100주년 기념
장녀 문영금 관장 대구 특강
“우리 사회 내 통일연습 필요”
20180427
지난 25일 문익환 목사의 장녀 문영금 통일의 집 관장이 문익환 목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늦봄 문익환 목사의 역사와 계승’을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문 관장은 배우 문성근씨의 친누나이기도 하다.

노무현재단대구경북지역위원회가 지난 25일 오후 ‘통일의 아버지 문익환 목사 탄생 100주년기념 강연회’를 주최했다. 이날 대구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 상상홀에서 문 목사의 장녀 문영금 통일의 집 관장(70)이 ‘늦봄 문익환 목사의 역사와 계승’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

문 관장은 먼저 ‘통일의 집’(서울 강북구 인수봉로251-38)을 소개했다. 이 집은 문 목사와 가족이 1970년부터 살아온 집인데, 문 목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생일인 오는 6월1일 그동안 방치돼 있던 집을 옛 모습으로 복원해 시민을 위한 통일박물관으로 만들고자 한다는 것. 새롭게 단장될 이 박물관에는 문 목사와 부인 박용길 장로간의 옥중서신, 방북일기, 수의, 수인번호표, 감옥에서 쓰던 물건 등 2만5천여 점의 유물을 전시할 예정이다. 문 목사는 1976년 3·1민주구국선언문 사건으로 첫 구속된 이후 시국관련 사건으로 총 6번, 11년4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다.

문 관장은 먼저 “아버지께서 세상에 많이 알려져 있으므로 가족과 가정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겠다”면서 “우리집은 가족이 함께 의기투합해 통일운동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통일의 집은 아버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공간”이라고 했다.

이어 “아버지는 신학자였다. 젊은 시절 성경번역에 집중하느라 민주화운동에 직접 뛰어들지 못했지만 4·19혁명을 비롯해 장준하 선생과 전태일 열사의 죽음을 애석해하셨고, 특히 인혁당 사건으로 억울하게 희생당한 분들에 대해 몹시 마음 아파했다. 친구였던 윤동주 시인이 돌아가실 때도 그랬지만, ‘이들의 삶을 내가 받들어 살아가야겠다’고 종종 말씀하셨다” 고 밝혔다.

문 목사의 고향(중국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 명동촌)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문 목사는 영화 ‘동주’에도 나오 듯 윤동주 시인과 송몽규 지사의 고향 친구다.

“할아버지(문재린)는 목사였다. 명동학교 1회 졸업생으로 증조부께서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함경북도에서 북간도로 이주할 때 따라갔다. 할아버지는 그 지역의 첫 세례교인이자 첫 목사였으며 3·1운동(연변에선 1919년 3월13일) 때도 참여했다”고 했다. 또 “아버지께선 명동학교-은진중-평양숭실학교-용정광명학교-일본유학-만주 신학교까지 한곳에서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다”면서 “광복 후 1946년 남으로 와 한신대의 전신인 조선신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유학을 갔으나 6·25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유엔극동지구 사령부 통역병으로 근무했다”고 했다.

1955년 미국에서 귀국한 문 목사는 한신대와 연세대에서 교수생활을 하며 목회활동을 했다.

문 관장은 선친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가정예배를 할 땐 항상 나라와 민족과 약자와 고통받는 자를 위해 먼저 기도했다. 특히 한글사랑이 남달랐다. 말을 할 때도 ‘이런 건 중국식, 일본식, 미국식 표현’이라며 우리말 쓰기를 강조했다. 또 식사 때마다 ‘천천히 씹어라. 적어도 50번은 씹어라. 이 밥이 너희들 입으로 들어갈 때까지 농부의 땀, 음식 만든 사람을 기억하고 밥 한 톨 남기지 말아라’고 하면서 검소한 생활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이어 “가족간 대화가 많았다. 정치, 교육, 문화, 예술 등 다양했는데, 어른이건 아이건 자신의 의사를 밝혔으며 모른다고 핀잔주지 않았고 어리다고 무시하거나 조롱하지 않았다. 특히 우리집엔 남녀차별이 없었다. 어머니께선 ‘남의 집엔 아이들이 속을 썩여 어른이 힘든데, 우리집은 어른들이 속을 썩여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고 했다”면서 청중을 웃게 만들었다.

문 목사의 조국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민주화운동을 할 때 선 민주, 후 통일이란 얘기가 나왔는데 아버지께선 ‘몸과 마음이 따로가 아니 듯 함께해야 한다’고 했다. 또 ‘흑백논리를 갖고 좌우로 나눠 편을 가르면 안 된다. 남북, 동서, 남남분열로 어떻게 통일을 하겠느냐. 분단을 악용한 이념갈등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희생됐는데, 형제를 적이라고 싸우면 언제 화해가 되겠느냐. 국경 통일보다 우리 마음 속에 먼저 평화와 화해의 통일이 와야 한다. 통일도 연습이니 우리 사회 안에서 통일연습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문 관장은 끝으로 “부모를 존경한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고 행운이다. 난 아버지를 묻을 때 묻어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분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대신 그 삶을 살아줘야 할 텐데, 여러분이 함께 그 뜻을 품고 살아갔으면 좋겠다”면서 강연을 마쳤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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