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한반도 비핵화, 급할수록 돌아가야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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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14   |  발행일 2018-05-14 제30면   |  수정 2018-05-14
北 핵실험장 폭파일정 공개
비핵화 가시화 첫조치 의미
先 핵개발자료 확보할 필요
한미가 각자 정치적 이유로
큰맥락 놓치는 감 없지않아
[송국건정치칼럼] 한반도 비핵화, 급할수록 돌아가야

북한이 4·27 판문점 선언에서 약속했던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첫 가시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그제(12일) 밤 발표했다.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오는 23일부터 25일 사이에 폐쇄하겠다고 했다. 청와대는 “남북 정상회담 때 한 약속을 지키겠다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본다. 풍계리 갱도를 폭파하는 다이너마이트 소리가 핵 없는 한반도를 향한 여정의 첫 축포가 되기를 바란다”(김의겸 대변인)며 환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즉각 “고맙고, 매우 현명하며 품위 있는 태도(Thank you, a very smart and gracious gesture)”라며 반겼다. 북한이 ‘핵실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해 공화국 북부 핵실험장을 폐기할 것’(4월20일 노동당 제7기 3차 전원회의 결정서)이라고 밝힌 데 이어 구체적 액션 플랜을 공개한 건 분명 긍정적인 진전이다. 다만,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 논의가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생각해 볼 문제들이 있다.

먼저 트럼프는 왜 북한에 대해 급속하게 관대해진 걸까. 김정은을 ‘미치광이’ ‘병든 강아지’ ‘꼬마 로켓맨’이라고 불렀다가 지금은 “개방적이다” “훌륭하다” “현명하고 품위 있다”로 바뀌었다. 물론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실어 미국 본토로 날려 보내는 실험을 할 때와 ‘완전한 비핵화’를 선언하고 실행계획을 공개하는 지금의 김정은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한반도 핵 문제 해결을 자신의 최대 치적으로 삼기 위해 큰 맥락을 놓치고 있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분석은 우려스럽다. 싱가포르로 최종 확정된 북미정상회담 장소를 놓고 판문점까지 거론하며 리얼리티 쇼 하듯이 흥행을 일으키고, 북한 억류 미국인 3명의 송환을 드라마처럼 연출했다. 본질적 측면에서 더 중요한 건 트럼프가 재선 고지의 발판이 될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선거전략 차원에서 한반도 핵 문제에 접근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우리 안으로 눈을 돌리면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협상해야 할 책임자들이 좀 들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평화만 가지면 된다”고 했다. 실제로 중간선거 유세에 나선 트럼프에게 지지자들이 ‘노벨’을 연호했다고 한다. 노벨 평화상은 10월에 발표하고 12월에 시상한다. 미국 중간선거가 11월에 있으니 트럼프에겐 매력적인 필승카드가 될 수 있다. 만일 트럼프가 ‘성과’에 급급해 영구적인 북한 핵 폐기 프로그램 없이 선언적인 합의만 하거나, 미국을 직접 위협하는 ICBM 폐기 정도로 만족한다면 우리는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북한이 풍계리 핵 시설을 폭파하는 방식으로 폐쇄하겠다고 발표하고, 이를 한·미가 쌍수를 들어 환영한 것도 찜찜한 구석이 있다. 당초엔 풍계리 폐쇄 과정을 해외 언론과 전문가들에게 공개하겠다고 했다가 막상 발표에선 전문가가 빠졌다. 풍계리 일대는 북한이 6차례 핵실험을 한 곳이다. 그렇다면 폭파를 해서 흔적을 없애 버리기 전에 한국과 해외 전문가들이 들어가 북한의 실질적인 핵 기술에 대한 정보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핵실험을 하고 남은 플루토늄이나 우라늄 같은 핵 물질 시료를 채취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래야 영구적 핵 폐기를 위한 기본 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핵개발 증거인멸 현장을 보면서 환호성을 올리는 꼴이 될 수 있다. 김정은의 신년사 발표 이후 전개되는 상황들을 따라가다 보면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자꾸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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