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아테네학당’의 이상과 현실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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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30   |  발행일 2018-07-30 제26면   |  수정 2018-10-01
평화라는 정치적 이념보단
세계각국 경제는 각자도생
우리의 경제는 왜 불황인가
반기업 정서 부추기지 말고
좌우를 넘어선 창조 해내야
20180730
백승균 계명대 목요철학원장

‘아테네학당’은 16세기 초 라파엘로가 그린 프레스코 벽화다. 르네상스시대의 명화 중 명화로 꼽힌다. 그림 속에는 수많은 그리스 학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는데, 중심인물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다. 플라톤은 손가락으로 천상을 가리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손바닥으로 지상을 가리킨다. 플라톤은 이데아와 이상세계,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과 현실세계를 보여주고자 했다. 플라톤은 변증론을 가지고 보편적 이념의 진리를 인식하고자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을 가지고 현실적 인간의 진리를 논증하고자 했다. 그래서 플라톤에게는 이데아만이 실재세계(ousia)로서 참이고, 그 밖의 모든 것은 생성계(genesis)로서 이데아의 모상이고 가상일 뿐이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천상보다는 현실에서 사람은 덕으로 살아야하고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먼저 삶의 목표를 세워야 하며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곧 행복이고 행복은 중용을 지키면서 사는 삶이라고 말한다. 만용과 비겁의 중용에서 ‘용기’가 생겨나고, 낭비와 인색의 중용에서 ‘절제’가 이뤄진다. 플라톤에게는 하늘의 빛을 담은 성자의 주황색 망토,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땅의 기운을 품은 만인의 파란색 망토를 입혔다. 오늘날까지도 ‘아테네학당’의 두 주인공은 우리를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케 한다. 사람은 이상만을 가지고 살 수도 없고, 현실에만 집착해 살아서도 안된다. 이상은 현실의 삶을 용납하지 않고 현실은 이상의 꿈을 허락하지 않는다.

지금 세계의 나라들은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글로벌시대니 세계평화니 하는 종전의 정치적 이념들을 송두리째 묵살하고 각자도생의 경제만을 치켜들었다. 이념을 걸고 함께 살자던 시대는 끝났다. 현실은 냉혹하기만 한 경제뿐이고 이상은 발붙일 틈이 없다. 세계를 떠도는 난민들을 보라. 이념이나 평화는 구호일 뿐 생존만이 현실이다. 미국과 중국은 생존싸움으로 맞붙었다. 이 틈에서 세계경제 전체가 휘둘리고, 우리 경제는 곤두박질치게 됐다. 그런데 현 여당의 원내대표는 공공연하게 우리나라의 글로벌 기업들에 대해 무모한 혐오증으로 질책이나 하듯 “삼성이 하도급기업들을 쥐어짜고 짜서 세계 1등 기업이 됐다. 삼성이 순익 20조원만 풀면 200만명이 1천만원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황당한 발언까지 하고 나섰다. 우리나라 20대 그룹 중 18곳, 그러니까 90%가 경영권을 위협받고 있다니 벌써 생존의 두려움이 앞선다. 미국의 통상압박은 차치하고라도 중국의 전기차배터리 역시 우리나라와 일본을 제치고 이미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우리나라의 반도체산업 역시 눈앞이 캄캄해진다. 설상가상 우리나라의 최저임금마저 미국이나 일본보다 높아진다고 소상공인들은 “나를 잡아가라”며 발을 동동 굴리고 있다.

미국이나 중국, 심지어 독일이나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 경제가 호황으로 가는데 왜 우리 경제만 하락하고 있는가? 현 정부는 이제 전 정부를 탓하지만 말고 차분히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면서 ‘처음’을 상기할 때가 됐다. 먼저, 경제적으로 격려는 못해줄망정 반기업 정서를 어떤 형태로든 부추기지 말아야 한다. 기업들이 적어도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했지 않는가! 둘째, 정치적으로는 선량한 보수까지 적폐로 몰아세우지 말아야 한다. 특히 보수궤멸이란 말은 섬뜩하기만 하다. 그들 틈에서 마침내 우리가 민주화도 달성했지 않는가! 이젠 다 함께 좌우를 넘어 새로운 대한민국을 창조해 내야 할 때다. 셋째, 어떻게 우리의 역대 대통령들은 평가절하하면서 김정은을 두고는 ‘백성을 생각하는 지도자’라 할 수 있는가. 심지어 그렇게나 퍼주고 환대해줬으며 세계무대에 데뷔까지 시켰는데 ‘운전자노릇’은커녕 ‘조수노릇’도 못한다는 조롱까지 받고 있다. 김정은도 좋지만 먼저 우리 경제를 챙기고 흠이 있더라도 전직 대통령들을 챙기길 바란다. 보수 뒤에도 사람이 먼저 있었고 진보 뒤에도 사람이 먼저 있었다. ‘사람’을 내걸고 이 정권이 출범하지 않았던가! 적폐로서만 밀어붙이지 말고 ‘사람’으로서 예우하고 ‘역사’도 챙겨라.백승균 계명대 목요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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