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브레히트와 괴벨스, 두 천재가 꿈꾼 연극

  •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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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09   |  발행일 2018-08-09 제26면   |  수정 2018-09-21
연극을 통해 세상을 바꾸자
독일 태생 두사람 꿈 같지만
나치정권속 反戰 일깨우고
히틀러 선전부장 활동하고
지향점은 서로 완전히 달라
20180809
김미정 극단 구리거울 대표 연출평론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연극을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교육적 기능과 사회적 효용성을 가진 예술’로 정의했다. 즐겁게 배우면 누구나 쉽게 익히는 법. 그러기에 피터 셰퍼는 연극을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또 가장 좋은 학교’라 하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면 연극은 태생적으로 사회 변혁의 효과적인 도구라 할 수 있다.

연극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시도는 꾸준히 이뤄졌다.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희곡을 쓴다’고 선언한 노르웨이 작가 헨릭 입센은 ‘인형의 집’으로 여성 해방을 부르짖었고, 안톤 체호프는 ‘벚나무 동산’에서 인생의 단면에 현미경을 들이대듯 제정 러시아 말기의 사회적 부조리를 샅샅이 들춰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활동한 사상가이자 극작가인 조지 버나드 쇼는 이상적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연극을 활용했다. 쇼는 활기찬 ‘생명력’으로 사회의 ‘진화’를 이끄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고 사회적 문제에 대한 긴 토론 장면을 배치해 관객의 문제의식을 일깨웠다. ‘워렌 부인의 직업’은 매매춘과 자본주의, 성직자들의 도덕적 타락, 이권을 둘러싼 귀족들의 허위와 위선을 파헤친 보고서라 할 수 있다.

쇼보다 반세기 뒤 독일에서 태어난 브레히트와 괴벨스 역시 연극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이들의 지향점과 도착 지점은 전혀 달랐다.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는 1920년대 ‘비판적 사고를 통한 사회적 실천’으로 이끄는 연극, 즉 감정이입에 바탕을 둔 아리스토텔레스적 연극과는 구별되는 ‘서사극’을 창시했다. 반전 시를 써서 퇴학당할 뻔 했고, 1923년부터 나치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창작활동에 제약을 겪다가 1939년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이 벌어진 그 이튿날 망명을 떠난 브레히트가 조국과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그는 극중 인물에 대한 관객의 감정적 편들기를 훼방하고 객관적 판단을 유도하는 ‘소격효과’를 거두기 위해 인과관계를 배제한 에피소드들을 배치하고, 불을 켠 채 극을 진행하거나 음악과 재판 장면을 도입했다. 관객으로 하여금 극중 현실이 ‘연극’에 불과함을 인지하고, 비판적 거리에서 극중의 문제를 관찰하도록 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나치 정권의 잔혹한 통치가 극에 달하고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1939년 발표된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은 연극사에서 이정표가 되는 작품이다. 주인공 억척어멈은 30년전쟁(1618∼1648년 독일 신교와 구교 사이에 벌어진 종교 전쟁) 중 마차를 끌고 전장을 찾아다니며 군인들을 상대로 행상을 하며 홀로 억척스럽게 자식을 키운다. 그녀는 목숨을 앗아가는 전쟁을 비난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전쟁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전쟁이 끝난다는 것은 곧 밥벌이가 끊긴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브레히트는 전쟁으로 인해 세 자식을 차례로 잃고 홀로 남아 목숨처럼 지킨 마차를 끌고 또다시 군대의 뒤를 쫓는 억척어멈의 선택과 행적을 통해 미련한 이기심이 자초한 재난을 경고하고 반전의식을 일깨운다.

동시대를 산 또 다른 천재 파울 요제프 괴벨스(1897~1945)의 극장은 국가였다. 그는 히틀러를 영웅으로 보이도록 연출하고, 대중들을 선동해 국내 정치에 대한 불만을 유대인에 대한 증오로 몰아가 광기어린 분노를 퍼붓도록 이끈 선전선동 정치의 작가이자 연출가였다.

가난한 노동자 계층과 소아마비 환자라는 한계를 넘기 위해 하이델베르크대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지만, 편견으로 어떤 기회도 갖지 못한 괴벨스는 자신의 천재성을 알아 본 히틀러에게 발탁돼 독일 나치 정권의 선전부장에 오른다. 그는 “언론은 정부 손 안의 피아노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강력한 힘이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선전은 일종의 예술이다”를 외치며 검열을 통해 언론을 통제하고 대중을 선동해 히틀러의 야욕을 달성하도록 충성을 바쳤다. 히틀러가 자살한 다음날, 대중선동연극연출가 괴벨스도 자신이 만든 지옥 같은 세상을 남겨두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어쩌면 브레히트가 될 수도 있었다.김미정 극단 구리거울 대표 연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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