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貴鵠賤鷄(귀곡천계)

  • 장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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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28   |  발행일 2018-08-28 제30면   |  수정 2018-08-28
소신과 철학 정의롭다해도
결과는 의도와 다를 수 있어
이념·신념보다 절실한 것이
발등에 떨어진 불‘생계문제’
먼 미래보다 현안해결 시급
[화요진단] 貴鵠賤鷄(귀곡천계)
장준영 교육인재개발원장

‘버스에서 어떤 사람이 말을 더듬거리며 옆에 있는 남자에게 목적지까지 얼마 걸리느냐고 물어봤다. 옆에 있던 남자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도 계속 무시했다. 그것(상황)을 처음부터 지켜보던 어떤 아저씨가 그 남자의 멱살을 잡고 밀쳤다. (그 아저씨는) 장애가 있는 사람,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 남자는 말을 더듬거리며 울면서 말했다. 자신도 말을 더듬거리니까, 대답하면 상대가 자신을 흉내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더 큰 상처를 주는 것이고 자신은 누구보다 그 고통을 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늘 생각한다. 자신의 정의가 늘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언제적 이야기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얼마 전 우연찮게 보게 된 방송인 사유리의 SNS 내용이다.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반전도 반전이지만 울림이 컸다. 소신과 철학이 상식에 부합하고 정의롭다하더라도 그에 근거한 행위까지 정당성을 가지게 하진 못한다는 사실이 내심 두렵기도 하다. 언행에 앞서 자신의 판단이 경솔하거나 틀리지 않았는지, 행여 오판이었다면 바로잡는 용기도 필요하다. 고집과 소신, 그리고 소통과 불통은 한 끗 차이일 수도, 엄청난 차이일 수도 있다.

갈수록 힘들다는 소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자들의 절규에 가까운 호소가 심상찮다. 고용상황이나 폐업통계 등 경제지표도 섬뜩할 정도로 좋지 않다. 그래서인지 당·정·청은 요즘 바쁘다. 연일 머리를 맞대며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지금껏 나온 고용 및 지원 대책이 적지 않아 지켜보는 사람들도 도대체 뭐가 뭔지 헷갈릴 정도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난 19일 열린 ‘고용쇼크’ 대책회의를 통해 또다시 화두 하나를 던졌다. “송구스러우나 정부를 믿고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당사자들의 반응은 대부분 싸늘하다. 차갑고 냉소적인가 하면, 더러는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기다리라는건지 버티라는건지, 기다리면 적금 만기가 돌아오듯 형편이 갑작스레 나아질 것인지 등에 대한 회의적 의문이 꼬리를 문다. 수십 조원을 들여 국정의 중심과제로 추진하고 있다는 정책치고는 현재 상황이 너무 초라하다.

문재인정부가 여전히 키워드로 내세우는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논란도 거세지고 있다. 여·야는 극명하게 입장이 다르다. 여당은 “적극적인 재정 대책을 펴면 조만간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지집단을 뛰어넘어 국민 전체를 위해 결정해야 하는데 확실히 잘못된 프레임을 고집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청와대는 장하성 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엇박자 시각’을 해소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어찌보면 생계가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대다수 국민들에겐 ‘퍼주기’ ‘눈치보기’ 등으로 함축되는 상황이 충분히 야속할 수 있다. 경제분야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여러 정책에 대한 호불호가 나날이 뚜렷해지면서 분열과 갈등 역시 커지고 있다. 얼마나 멋지고 담대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안정되지 않고 불안해하면 의미를 가지기 힘들다.

과연 재정 투입이 능사일까. 천문학적인 예산이 수반되는 만큼 효과가 없진 않을 것이다. 재정이란 게 곧 세금인데 이를 지켜보는 상당수 국민들의 시선은 불편하다. 정부는 올해와 내년도 세수 전망이 좋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나라 곳간이 든든해진다면 반겨야 할 상황인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정책이 ‘시장’과 각을 세우게 되면 후폭풍은 불가피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약자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귀곡천계(貴鵠賤鷄). 손에 닿기 힘든 먼 곳의 것(따오기 또는 고니)을 귀하게 여기고 가까운 것(닭)을 천하게 여긴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이웃동네 신경 쓴다고 우리동네 주민들의 삶을 소홀히 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항아리는 안깨는 게 상책이지, 깨고 난 다음에 조각 모음하는 것은 하책이다.
장준영 교육인재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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