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 최연소 국가대표 활약…‘태권도 26단 명문가’ 이름값

  • 손동욱 명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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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11   |  발행일 2018-10-11 제32면   |  수정 2018-10-11
강호동 성주중앙초 전임코치 부녀 ‘희망의 발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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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성주 중앙초등학교 내 태권도장에서 만난 강호동 코치 부녀. 강호동 코치(가운데)를 중심으로 보라(왼쪽), 미르 자매가 태권도 자세를 취하고 있다. 손동욱 기자 dingdong@yeongnam.com

2018년 한국 스포츠는 대구·경북이 중심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성발 ‘컬링 신화’는 평창올림픽 최고의 화제로 떠오르며 전 세계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대구FC의 수문장 조현우가 대회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아시안게임에서는 경북도청의 김서영이 ‘수영 여제’ 탄생을 알렸다. 이들이 끝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역을 빛낼 스포츠 꿈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그중 자녀 넷 중 두 딸을 국가대표로 길러낸 강호동 코치(44·성주 중앙초등 태권도부 전임코치) 가족은 우리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태권도 명문가’다.

생활체육인으로 출발한 강호동 코치
태권도의 뿌리 찾아서 택견수련 시작
택견+태권도 가르친 두딸들 전국 제패

첫째 보라, 고교입학해 성인무대 데뷔
리우 金 김소희 꺾으며 태극마크 획득
둘째 미르도 청소년 국가대표로 활동


◆태권도 26단의 태권도 명문가

강호동 코치 공인 7단, 아내 이일문 관장(성주 내 태권도장 운영) 공인 3단, 첫딸 강보라 공인 4단, 둘째딸 미르 공인 4단, 쌍둥이 아들 대한·민국 각각 공인 4단.

여섯 가족의 합은 26단이다. 4자녀가 한창 성장하고 있어서 앞으로 단수는 더욱 높아질 것임이 분명하다. 보통 3대째는 돼야 붙이는 ‘명문가’라는 칭호가 이 가족에게는 과하지 않다.

성주가 고향인 강 코치는 엘리트 체육인 출신이 아니다. 1980년대 그가 중학생일 때 성주에 유일한 태권도장에 관원으로 입문한 것이 태권도와 맺은 첫 인연이다. 그저 취미 수준으로 태권도를 수행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한 강 코치는 해병대에 입대했다. 최전방 부대인 백령도에서 근무했는데, 그 무렵 국방부 장관기 태권도대회를 앞두고 군별로 대표선수를 선발했다. 3단이었던 강 코치는 얼떨결에 해병대 태권도 대표팀에 합류하게 됐다. 강 코치 인생을 바꿔놓은 터닝포인트였다. 강 코치는 “군 전역 이후 진로를 고민했는데, 짧은 기간의 경험이 나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어린 친구들이 전문적으로 태권도를 할 수 있도록 지도해 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계기”라고 말했다.

강 코치는 전역 후 서울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의 한 태권도장에서 사범일을 하면서 엘리트 지도자가 되기 위한 꿈을 차근차근 밟았다.

강 코치의 내면에는 남들과는 다른 ‘강점(?)’이 자라나고 있었다. 다른 무술의 장점을 수용할 줄 아는 ‘유연한 사고’다. 이는 훗날 자녀인 보라·미르가 국가대표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자양분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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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라·미르 자매가 어린시절 택견 ‘자매 시범단’ 활동하는 모습. (강호동 코치 제공)

◆택견 자매의 탄생

지도자 길을 걸으면서 태권도에 완전히 매료된 강 코치는 ‘태권도의 뿌리를 찾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됐다. 태권도의 뿌리가 택견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강 코치는 위대택견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1999년 고향 성주로 돌아온 강 코치는 위대택견 수련관을 열었다. 태권도를 수련하며 만난 이일문씨와 결혼한 강 코치는 보라·미르·대한·민국 4남매를 출산했다. 강 코치는 보라와 미르가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한 4세 즈음 택견을 가르쳤다. 딸 자식을 강하게 키우다 보니 남모를 아픔도 있었다. 최근 강보라는 맹장염 수술을 했는데, 도핑문제로 진통제를 맞지 못 했다고 한다. 강 코치는 “부모로서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이 또한 딸이 강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빠의 ‘욕심(?)’에 택견을 시작한 자매지만, 보라·미르에게서는 ‘무도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동년배 어린아이들이라면 몸짓 하나 따라하기도 힘들텐데, 두 자매는 택견 특유의 화려한 기술을 곧잘 익혔다. 빠른 속도로 성장한 보라·미르는 ‘자매 시범단’으로도 활동했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내는 귀여운 기합소리와 화려한 발기술이 오묘하게 합쳐지면서 구름관중을 몰고 다녔다고 한다.

‘무술을 실전에 쓰지 않으면 무용이다’는 강 코치의 철학에 따라 보라·미르 자매는 겨루기판에도 뛰어들었다. 택견 초등부 경기에서는 남녀 구분이 없다. 그래서 남녀 어린이가 대적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두 자매는 겨루기판에서 진가를 드러냈다. 두 자매는 신체조건이 좋은 데다 힘까지 훨씬 센 남자 어린이들을 화려한 발차기로 무너뜨렸다. 택견판은 물론 관련 영상을 본 네티즌까지 열광했다.

두 딸과 함께 지역에서 무도인으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강 코치는 귀향 12년 만에 지도능력을 인정받아 2011년 성주 중앙초등 태권도부 코치로 부임했다. 초등부 택견판을 평정한 강보라·미르 자매도 중앙초등 태권도부 초창기 멤버로 합류해 본격적인 태권도 선수로서의 길을 걷게 됐다.

◆한국 태권도의 차세대 간판으로 떠오른 강보라·미르

화려한 발기술을 주무기로 한 택견을 베이스로 하다보니 주니어무대에서는 강보라·미르를 대적할 만한 상대가 없었다. 2015·2017년에는 강미르가, 2016년에는 강보라가 전국소년체전 태권도 종목 MVP를 석권했다.

강보라는 고등학교로 진학하며 성인무대에 데뷔했고 곧바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특히 올해 초부터 태권도판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강보라는 지난 2월 국가대표 선발전(-49㎏급)에서 2016 리우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소희를 꺾고 최연소 국가대표가 됐다. 지난 5월에는 베트남 호찌민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세계랭킹 1위인 태국의 패니파크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아시안게임을 앞둔 시점에 강보라는 어느새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급부상했다.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강보라는 8강에서 패니파크와 다시 만났지만 제 기량의 10%도 보여주지 못한 채 탈락했다. 강보라는 “긴장을 너무 많이 해서 준비한 전술을 하나도 쓰지 못했다. 너무 속상해서 많이 울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많은 분이 알아봐 주시고 응원도 해 주셔서 다시 힘을 냈다”고 말했다. 주니어 무대에서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는 강미르도 올해 발군의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 4월 튀니지에서 열린 세계청소년태권도선수권대회(-46㎏급)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대회 MVP에 올랐다. 이달 아르헨티나에서 개최된 제3회 청소년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성인 국가대표가 된 강보라는 진천선수촌에서 훈련하고 있다. 강보라는 아시안게임의 아픔을 훌훌 털고 일어나 2020년 도쿄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강보라는 “올림픽 전까지 다양한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이 목표이며, 올림픽 메달을 따내고 싶다”고 말했다.

청소년 국가대표인 강미르도 청소년 올림픽을 앞두고 진천선수촌에 입촌했다. 강미르 역시 언니를 따라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메달을 따내는 것이 목표다.

강 코치는 마지막으로 지도자 육성에 많은 관심을 가져 달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지역에서 보라나 미르처럼 좋은 선수가 충분히 나올 수 있는데 지도자가 많이 부족하다. 경북도에서 많은 관심을 갖고 지도자를 파견해 준다면 의성 컬링처럼 성주에서 ‘태권도 신화’가 탄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명민준기자 minj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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