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할 수 있지만 하고 싶지 않다

  • 장준영
  • |
  • 입력 2018-10-23   |  발행일 2018-10-23 제30면   |  수정 2018-10-23
사회 곳곳서 사건사고 발생
국민들은 안타깝고 두렵다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면
제때 제대로 책임을 물어야
선의의 피해자 줄일 수 있어
[화요진단] 할 수 있지만 하고 싶지 않다
장준영 교육인재개발원장

출근길 신천대로. 마치 지켜보고 있는 밥이 더디게 익는 것처럼 움직임이 답답하다. 도로 곳곳에서는 비집고 들어오려는 시도와 자리를 내주지 않으려는 방어가 알듯 모를듯 치열하다. 속도와 차간 이격거리 등 실시간 상황에 따라 나름의 질서가 형성될 즈음, 한편으론 이해가 되면서도 불편한 장면들이 가끔 목격된다.

앞차와의 거리가 유난히 먼 경우가 그렇다. 안전운전을 한다는데 뭐라 말하긴 그렇지만, 뒤따르는 운전자들은 정말 난감하다. 옆차로에서 수시로 끼어드는 상황이 반복되면 의도치 않은 무질서를 불러오기도 한다. 당사자 입장에선 안전과 배려일지 몰라도 뒤차 운전자들에게 오히려 정상적인 흐름을 방해하는 밉상으로 인식된다. 누군가의 선의가 또다른 사람의 시간을 빼앗거나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작용한다면 과연 합당한 일일까. 양보란 단어는 대개 아름답고 따뜻한 말로 쓰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민폐가 될 수도 있다.

남들이 뭐라든, 길게 꼬리를 문 행렬 사이로 끼어들면 당사자는 그저 해피하다. 욕이 뼛속으로 파고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 잘아는 얌체족들은 초행인 척, 초보인 척, 무지 급한 척하며 습관적인 만행을 저지른다. 묵묵히 질서를 지키던 운전자들은 ‘의문의 1패’를 당하게 된다. 운전을 하다보면 이런저런 유혹이 따르지만, 대다수가 행하지 않는 이유는 준법정신과 부끄러움 때문일 것이다.

독일의 문호 괴테. 그는 ‘인생은 다음 두 가지로 성립된다.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다. 할 수 있지만 하고 싶지 않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상황파악이 안되면 주제파악이라도 해야 하고, 설령 능력이 되더라도 가릴 줄 알아야 한다. 해야할 일이 있고, 해서는 안될 일이 있음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의 상식이자 이치 아닌가. 그 판단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언젠가부터 시야가 좁아지고 계산이 빨라지는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다. 권리만 강조되는 사회에서 책임의식에 이어, 공동체 의식마저 희미해져만 간다. 경우의 수가 많아질수록 세상은 난해해지기 마련이다. 소수의 이익이 다수의 권리를 침해하면서 패배감·무력감을 안긴다면 고쳐져야 마땅하다. 속담에는 ‘맞은 놈은 펴고 자고 때린 놈은 오그리고 잔다’라고 했는데 불행하게도 요즘은 아닌 것 같다.

크든 작든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 크기만큼의 대가를 치르는 게 맞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은 피해자 입에서 나와야지, 가해자가 먼저 꺼내면 싸움이 시작된다. 손톱만큼도 손해를 안보려는 부류일수록 권리를 입에 달고다니기 일쑤다. 이들은 핑계가 많고 변명에 능하며 잘 따지고 무례하기까지 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내로남불’의 실사판일지도 모른다.

최근 들어 ‘PC방 살인사건’이나 ‘해운대 음주사고’ 등 국민을 안타깝고 분노하게 만드는 사건사고가 잦아지고 있다. 불안하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렵기도 하다. 피해자는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겼는데 분석의 대가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선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본다. 맞은 아이의 현재와 미래보다 팬 놈의 장래를 더 걱정하는 것은 정말 부당하다.

음주운전을 범죄로 여기지 않는 국민은 이제 거의 없다. 하지만 같은 술이 원인인데도 주취폭력에 대해서는 아직 관대하다. 술 마시고 핸들을 잡으면 처벌을 받는것처럼 음주상태로 행패를 부리거나 폭력을 행사하면 더 엄하게 다스려야 형평성에 맞지않나. 이런저런 이유로 훈방하고 처벌을 경감해주는 현실이 마뜩잖다. 자제하고 절제할 줄 아는 사람들이 뿌듯해하고 대접받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바늘도둑이 소도둑된다고 했다. 가정이든 사회든 뭔가가 잘못됐으면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제때 제대로 지적을 하면서 책임을 묻고 바로잡아주는 것이 선의의 피해자를 줄이고 다수를 보호하는 상수가 될 수 있다. 권리만큼이나 의무가 중요하듯, 자유와 방종은 반드시 구분돼야 한다. 책임 여부에 대한 언급없이 ‘할 수 있다’는 긍정적 메시지만 날리면 나타나는 일들이 잦아지고 있다.

장준영 교육인재개발원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