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정쟁에 실종된 지방분권 개헌

  • 조정래
  • |
  • 입력 2018-10-26   |  발행일 2018-10-26 제23면   |  수정 2018-10-26
[조정래 칼럼] 정쟁에 실종된 지방분권 개헌

기대는 배반했고, 예측은 적중시켰다. 여야 정치권이 개헌을 무산시켰다는 말이다. 지난 6·13 지방선거 동시 개헌 무산에 이은 연내 개헌 가능성도 물 건너가리라는 관측이 현실화되고 있다. 개헌의 불씨는 정쟁의 회오리 바람에 되살아날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다.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롯한 뜻있는 인사들과 지방의회와 지방정부, 시민단체 등의 개헌 논의 요구에도 국회와 중앙정치권은 요지부동이다. 문 의장은 지난 제헌절 축사를 통해 연내 개헌안 도출을 강조하면서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미 수많은 논의를 거쳤기 때문에 여야 간 선거구제 개편과 개헌의 입장차도 그리 크지 않다”며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때를 같이해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 문제가 재점화되고 있지만 개헌동력은 간헐적으로 군불을 때는 수준에 불과해 탄력을 받기에는 역부족이다.

연내 개헌 합의안 도출조차 어려울 것이란 비관론은 무엇보다 개헌 논의 재개에 부정적인 민주당의 강고한 의지를 근거로 한다. 한국당은 당초 6·13 지방선거와 동시 개헌 공약을 파기하면서 그 대안으로 연내 개헌 일정을 제시한 바 있고 지방선거 참패 이후 국면전환용으로라도 개헌을 들고 나와야 하는 형국이지만 사실상 개헌 동력을 살릴 키는 민주당이 쥐고 있다. 민주당이 집권 여당으로서 민생 챙기기에 성과를 내야 할 시점에 개헌 블랙홀에 끌려들어가 봐야 정치적 실익이 없다는 정략과 계산을 하는 게 자연스럽다.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에 대한 법적·정치적 절차와 논의를 거부한 한국당에 개헌 불발의 모든 책임을 전가하려는 책략도 적지 않다. 개헌 논의의 정치적 전기 마련이 필요한 건 분명하지만 마냥 시대적 여망인 개헌을 외면하기는 어렵고 그래서도 안된다.

한국당은 연내 개헌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지만 개헌 공약 파기에 이어 연내 개헌 약속까지 저버린 결과를 초래한 장본인이어서 입지도 좁고 목소리도 높일 수 없는 실정이다. 그나마 우호적인 상황은 바른미래당, 민평당, 정의당 등 야 3당이 개헌과 함께 선거구제 개편 논의를 촉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당이 개헌에 대한 진정성과 적극적 의지를 인정받으려면 야 3당과 공조를 통해 어떻게든 민주당을 개헌 국면으로 견인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야 3당에서 요구하는 ‘선(先) 선거구제 개편 후(後) 개헌’ 방안을 수용하든가 아니면 민주당과 함께 고집해 오던 소선거구제를 포기하든가, 어쨌든 기득권을 왕창 내려놓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야권의 개헌 공조가 민주당 고립전략이거나 민주당의 개혁입법연대를 견제하기 위한 맞불이어서는 집도 잃고 절도 잃는다.

개헌은 현실적으로 민주·한국 거대 두 당의 합의를 전제로 해야 가능하다. 민주당은 개헌으로 촛불의 명령을 완성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시대적 과제이자 국민적 요구라고도 했다. 정략의 희생양이 돼선 결코 안되는 게 개헌이라면 민주당이 모르쇠로 일관해서는 곤란하다. 정치적 밀당이나 주도권 싸움에 너무 함몰되는 것 또한 소모적 정쟁에 지나지 않는다. 지방선거 압승에 안주해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에 무작정 반대로 일관해서는 명분도 실리도 잃게 된다. 대통령 발의 개헌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자 사실상 개헌 포기 선언을 불사한 문재인 대통령이 새로운 결단을 내놓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마침 전국 17개 시·도의회가 지난 22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지방분권 개헌 촉구 결의대회’를 가졌다.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주관으로 열린 이날 결의대회에서 시·도의원들은 중단된 지방분권형 개헌 논의 즉각 재개, 지방의회 자율성 확대를 정부와 국회에 촉구했다. 지난 24일에는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첫 회의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소모적인 논란과 정쟁으로만 끝내지 말고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선거구제 개선안을 조속히 내놓기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인다고 개헌이 될 리가 없잖은가. 지방선거 동시 개헌은 무산됐지만 그렇다고 개헌의 가치와 필요성까지 매장시켜버리는 건 좀스럽다. 문 대통령의 담대한 결단이 실종된 지방분권 개헌을 살려낼 가장 확실한 처방전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