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루앙루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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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18 07:40  |  수정 2019-03-18 07:40  |  발행일 2019-03-18 제24면
[문화산책] 루앙루파
김기수<대구예술발전소 예술감독>

최근 미술계의 핫이슈 가운데 하나는 2022년 독일 중부의 작은 도시 카셀에서 열리게 될 제15회 도큐멘타(documenta) 예술감독으로 루앙루파(ruangrupa)가 선정된 일이다. 5년을 주기로 열리는 데다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전시회의 예술감독 선정 및 발표는 그 자체로 화제가 되어왔지만 이번에는 좀 더 특별한 것 같다. 그것은 루앙루파가 미술계의 변방으로 간주된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를 기반으로 활동해온 아트 컬렉티브이고, 또한 선정되기 전에 크게 주목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미술문화계에서 도큐멘타가 왜 중요하고 루앙루파는 어떻게 선정될 수 있었을까? 우선 도큐멘타가 최고의 명성을 갖게 된 것은, 그것이 단순히 100일간 100만명에 가까운 관객을 끌어들이는 대규모 국제전시회여서라기보다는 현대미술의 담론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주요 이슈를 주도해왔기 때문이다. 도큐멘타가 이렇게 미술문화계를 선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언제나 파격적인 예술감독 선임이 있었다. 스위스 출신의 하랄트 제만과 지난 15일 타계한 나이지리아 출신 오쿠이 엔위저가 각각 1972년과 2002년에 선정되었을 때가 그러했다. 제만과 엔위저는 도큐멘타와 현대미술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꾼 기획자였다.

이러한 파격적 선임으로 전통적인 독일우선주의와 유럽중심주의, 백인우월주의를 차례로 깨트려나간 것도 무척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도큐멘타를 주관하는 카셀시와 조직위원회가 당대 첨예한 사회적·문화적·정치적 이슈를 다루며 미술담론을 주도할 수 있는 가장 유능한 인물을 소신껏 선정해온 운영철학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도큐멘타의 몫이 적지 않은 21세기 현대미술 담론은 전지구적 이슈인 사회적·국가적·대륙별 불평등과 민주주의, 생태계 등의 문제와 긴밀하게 관계한다.

우리는 루앙루파의 선정을 이러한 도큐멘타의 운영철학과 현대미술의 담론과 연관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루앙루파는 인도네시아어로 ‘공간’을 의미하는 루앙과 그것의 외부로의 ‘출현’ 또는 ‘시각화’를 의미하는 루파를 결합한 용어로서 시각공간(visualspace)을 의미한다. 수하르토 실각 후 2년 뒤인 2000년 미술가, 다자이너, 건축가, 작가 등 10여명으로 결성된 루앙루파는 지난 19년간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다양한 매체와 전략을 통해 이러한 시각공간을 지속적으로 확장하며, 참으로 대안적인 도시와 삶의 모델을 실험하고 실천해왔다. 루앙루파의 선정은 이에 대한 보상이자 공증으로서 우리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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