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성명학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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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13   |  발행일 2019-04-13 제23면   |  수정 2019-04-13

한때 성명학(姓名學)이 부각되던 시기가 있었다. 성명학은 말 그대로 사람들의 이름을 조사·연구해 특별한 흐름이나 법칙을 찾아낸 이름 학문이다. 예부터 성명에 대한 운세와 기운 등을 담은 신비한 분야로 받아들여졌다. 음양 오행은 물론 천간·지지·60갑자가 동원되고, 생년월일시와도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게 성명학의 골자다. 자녀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주고 싶은 것은 모든 부모의 바람이다. 더구나 이름을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자녀의 운명이 달라진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전직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나라를 어지럽혔던 최순실 사태 즈음에도 성명학 관련 해석이 분분했다. 최순실씨 본인뿐 아니라 주변 친인척들이 여러 차례 이름을 바꾼 것으로 알려지면서 샤머니즘적 주술과 관련이 있다는 추측도 나왔다. 최순실씨의 원래 이름은 최필녀로 1979년 9월3일자 동아일보에 나왔다. 그런데 최서원으로 바꿔 사용했다. 또 그의 아버지 최태민씨가 7번 이름을 바꾼 기록과 딸·조카도 이름을 바꾼 사실이 드러났다.

사람뿐 아니라 조직이나 단체의 이름도 중요하다. 우리나라 정당들도 외국과 마찬가지로 자유나 민주, 환경 등 지향하는 이념을 당명에 넣는다. 그런데 한국당이나 정의당 같은 당명은 문제가 있다. 과연 한국당이 한국을 대표하는가. 정의당만 정의롭고 다른 당은 그렇지 않다는 뜻인가. 정당명에서 오만이 묻어난다는 지적이 없지 않다. 건설회사들이 붙이는 아파트 이름도 마찬가지다. 위치와 주변 환경, 건설비 수준에 걸맞은 쉬운 이름을 붙여야 마땅하다. 하지만 대다수 화려하고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는 외국어 명칭 일색이다. 당연히 부르기 어렵고 기억하기 쉽지 않다. 오죽하면 한국의 아파트 단지 이름이 어려운 것은 시어머니로 하여금 잘 기억하기 어렵게 만들어서 못 찾아 오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우스개 해석까지 붙었겠는가.

어쨌거나 이름을 함부로 지어서도 안되겠지만, 한번 지은 이름을 자주 바꾸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름을 바꾸는 의도가 대개 불손하기 때문이다. 사기꾼들의 이름이 많은 이유와도 관련 있다. 자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은 오로지 노력·성과에 의해서만 가능해야 한다. 짐승이 죽어서 가죽을 남기듯 사람은 죽어서 남기는 것이 이름이다. 그 무엇보다 이름이 빛나야 옳지 않을까.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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