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상자 속의 작가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가 예술”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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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19   |  발행일 2019-06-19 제22면   |  수정 2019-06-19
심효선 작가 8월11일까지 전시
매일 오전 10시 갤러리서 작업
번호표 뽑은 관객들과 대화도
유리상자 속의 작가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가 예술”
심효선 작가가 봉산문화회관 유리상자에 설치된 스튜디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람을 만나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예술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효선 작가는 어느날 ‘그림이 무엇인지, 예술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됐다. 과연 시각적 결과물만이 예술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육아로 한동안 작업에 손을 대지 못하면서 그림에 대한 열망이 쌓였던 시기였다. 문득 2015년의 드로잉 작업이 떠올랐다. 당시 일년치 그릴 분량의 A4 용지를 미리 만들어놓았다. 드로잉의 주제는 라디오나 신문에 등장하는 사회문제였다. 2017년까지 500장 이상의 드로잉이 쌓였다.

“육아로 공백기를 거친 뒤 다시 펜을 잡았을 때 드로잉 작업이 의미 없이 느껴졌습니다.” 그림과 예술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면서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고 인식하게 됐다. ‘사람을 만나고, 뉴스를 보는 것도 예술이 될 수 있다’며 예술의 개념을 확장시켰다. 봉산문화회관에 ‘오픈 스튜디오’를 열게 된 배경이다.

실제 봉산문화회관 유리상자에는 작가의 작업실이 차려져 있다. 사방이 훤히 보이는 공간에서 작가는 ‘열심히’ 그림을 그린다. 관객이 스튜디오 안으로 직접 들어가 작가와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작가와의 대화를 원한다면 유리상자 밖에 설치된 번호대기표 기계에서 번호표를 뽑으면 된다. 작가는 “처음 시도해 보지만, 작업 구상은 많이 했다. 천막을 쳐서 해볼까라는 생각도 했다”고 웃었다.

작가는 화~금요일 직장인처럼 유리상자로 출근한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유리상자에 설치된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한다. 롤페이퍼에 그림을 그리고, 관객이 찾아오면 대화를 나눈다. 작가는 7월12일까지 유리상자이자 오픈 스튜디오에 상주한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작가는 “관객과 서로 보는 것을 의식했다. 관객의 시선이 느껴졌을 때 ‘고개를 들어야 하나, 인사를 해야 하나’라고 갈등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림의 주제는 ‘무엇이든 거침없이 자유롭게’이다. 혼자 있을 때나 관객과 대화를 나눌 때도 작가는 그림을 그린다. 작가는 “떠오르는 생각을 필터링 없이 즉각적으로 표현한다”고 했다. 관객과 대화를 바탕으로 그리는 그림은 ‘기념품’이 될 수 있다. 관객이 원하면 구입할 수 있다.

작가는 작업 초기 뉴스에 나오는 현장과 자신의 모습을 오버랩시켰다. 인터넷에서 자신을 대신하는 캐릭터인 아바타를 집회나 사건 현장과 병치시키기도 했다. 사회에 대한 고민을 작업으로 연결했지만, 세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즉흥적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이다. 작가는 “예전에는 삶과 사회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타협했는데, 지금은 ‘상관없잖아. 내 행위만 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와 동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전시는 8월11일까지. (053)661-3500

글·사진=조진범기자 jjch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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