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어즈버 태평연월이…

  • 장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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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09   |  발행일 2019-07-09 제30면   |  수정 2019-07-09
경제도 안보도 외교도 불안
국민마음을 편하게 하는 게
정치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
옳은 결과를 내놓지 못하면
정부 선의도 비판받아 마땅
[화요진단] 어즈버 태평연월이…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에…’ 대구 출신 천재가수 이용복이 1974년쯤 선보인 노래 ‘어린 시절’이다. 어린이합창단과 함께하면서 가요인 듯, 동요인 듯 무척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요즘 시각으로 보면 동화같은 노랫말이지만, 변변한 놀이가 없었던 그 시절에는 그리 드물지 않은 일상이었다.

돌이켜보면, 누군가의 마음속 태평성대는 거의 과거였던 것 같다. 기억을 추억으로 바꿔주는 세월의 힘은 차치하더라도 문득문득 스쳐가는 그 아련함은 분명 그리움이다. 단순했기에 또렷하고 순수했기에 군더더기가 없다. 그래서 더 아름답고 애절한 모양이다.

언젠가부터 기억의 해상도가 역주행하고 있음을 심심찮게 느낀다. 조바심도 나고 섬뜩하기도 하다. 어릴적 특정기억은 선명하기까지한데, 엊그제 있었던 일들은 필름이 끊긴 듯 도무지 생각 안날 때가 잦아지고 있다. 처음엔 무슨 병인가 싶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주변에는 이런 현상을 겪거나 경험한 이들이 의외로 많고, 대부분 그러려니 받아들이면서도 뭔지 모를 불안감은 떨치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과거가 편안하고 그리워지는 것은 지금이 그만큼 힘들고 고통스럽거나 미래가 불안하다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런 심적상태는 지극히 개인적인 원인이 주류이겠지만, 조직이나 사회·국가의 불편·부당·불공정·일방통행 등 일그러진 모습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과 아쉬움 등도 한몫을 한다. 그리고 그 비중도 점점 커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내 코가 석 자’인데 점점 흉흉해지는 사회와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나라의 앞날에 대한 걱정까지 보태져 추억의 공간은 줄고만 있다.

몸이 힘들어도 마음이 편하면 견딜 만하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의 의지나 바람과는 상관없이 하루가 멀다하고 국내외에서 펼쳐지는 다이내믹한 상황은 심신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몰고 간다. 진짜 ‘겪어보지 못한’ 장면의 연속이다. 조만간 나아진다는 경제는 온기가 돌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부은 일자리창출사업도 아직 효과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

‘북한 목선’은 충격과 함께 공분을 일으키며 군·경의 경계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발표 및 처리과정도 명쾌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사기를 먹고사는 조직이 기개를 잃으면 무엇으로 존재가치를 증명할지 정말 우려된다. 감성이 판을 치면 이성적인 사고는 외면을 받거나 무시당하기 마련이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의 국익을 위해 벌이는 살벌한 무역전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 틈바구니에서 운신의 폭이 별로 크지 않음은 인정하지만 슬기롭게 극복하겠다는 정부의 구체적인 전략이나 의지는 글쎄다. 거의 원론적인 수준의 답변만 반복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변하지만 시중에서는 ‘이쪽저쪽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더 많다. 경제계 역시 자구책 마련에 역량을 집중할 뿐, 별다른 기대를 걸지 않는 분위기가 읽힌다.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등 저지른 악행에 대한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고 있는 일본이 판결을 문제삼아 경제보복에 나선 데 대해서도 한두박자 놓친 타이밍에서 강온양면의 대책을 밝혔다. 사실상 중국에 입장표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사드사태’와는 결이 다른 모습이긴 하나, 국민적 신뢰를 얻기에는 여전히 부족하고 어설퍼 보인다.

‘옛날이 좋았다’는 말들을 부쩍 자주한다. 대부분 부귀영화를 누려보지도, 무슨 대단한 권력을 가져보지도 못했던 사람들이다. 그저 자기역할에 충실하며 국가와 사회를 지탱했던 평범한 이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국민을 마음 편히 잘살게 해주는 것이 정치의 가장 기본 아닌가. 걱정을 끼치고 발목을 잡는 건 후진국에서나 일어나야 할 일이다. 올바른 결과를 국민에게 내놓지 못하면 선한 의도였더라도 칭찬을 받을 수는 없다.

‘정치꾼은 다음번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의 일을 생각한다’라고 했다. 진영논리와 이기주의의 틀을 깨는 정치가가 나와서 마음속 태평성대가 미래에도 존재할 수 있다는 확신을 던져주면 좋겠다.

장준영 동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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