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조급하면 일을 그르치게 된다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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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23   |  발행일 2019-08-23 제22면   |  수정 2020-09-08
리더가 업적에만 치중하면
오히려 성사시키기 어려워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파악
작은 목소리라도 경청해야
오류를 줄이고 성공 가능성
[경제와 세상] 조급하면 일을 그르치게 된다

#1. 며칠 전 후배에게 톡을 보냈는데 그날 답이 없었다. 하루가 지나도 응답이 없어 확인해 보니 미확인 상태였다. 후배는 해당 메신저 앱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 것으로 짐작하고 다른 모바일 메신저 앱으로 메시지를 보내자 금방 답이 왔다. 모 시중은행이 3년 전 야심차게 선보인 메신저 앱을 이용한 것이 결국 불통의 원인이었다. 금융권에서 최초로 메신저 사업을 시작한 그 은행은 대대적인 홍보와 직원들의 모집 활동으로 가입자가 500만명을 넘어섰다고 했다. 그 무렵 메신저 시장에는 카카오톡이 이미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독점적 위치를 구축하고 있었다. 네이버는 카카오톡이 선점하고 있는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라인 앱을 출시해야 했을 정도였다.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 기능과 부가 서비스를 갖춘 생활금융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은행의 포부는 제대로 실현되고 있을까. 당초 예상과는 달리 지지부진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2.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지원하기 위해 정부는 다양한 정책을 펼쳐왔다. 그중 하나가 ‘제로페이’ 사업이다. 제로페이는 지난해 12월 정부와 서울시가 소상공인의 신용카드 수수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도입한 QR코드 기반의 모바일 간편 결제 서비스다. 제로페이는 신용카드와 달리 고객계좌에서 가맹점주 계좌로 대금이 바로 이체되며 연간 매출이 8억원 이하인 가게에서는 전혀 수수료를 부담하지 않는다. 소상공인을 돕는다는 선한 의도로 시작된 제로페이 사업은 당초 목적대로 소상공인들로부터 환영받고 착한 시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을까. 지난달 여러 언론에 4천여개 동네마트를 회원으로 둔 한국마트협회가 제로페이 사업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사례로 든 모 은행의 생활금융 플랫폼 사업과 서울시의 제로페이 사업이 성공의 길로 접어들기를 바라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해당 사업을 기획하는 초기 단계에 면밀한 시장분석과 추진 과정에 맞닥뜨릴 장애 요인에 대한 극복방안 마련이 부족했다고 여겨진다. 아마도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논어의 자로편(子路編)에 나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공자의 제자 자하가 거보라는 고을의 태수로 임명받고 공자에게 정치하는 방법을 물었다.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급히 서두르지 말고 작은 것에 집착하지 말라. 급하게 서두르면 일이 성사되기 어렵다(欲速不達·욕속부달). 작은 것에 매달리다 보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欲巧反拙·욕교반졸).”

공자의 조언은 재임 기간에 내세울 치적을 남기려고 조급하게 무리하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조직의 구성원들은 리더가 하고자 하는 일이 조직의 이익과 직결된 일인지 아니면 자신의 업적을 위한 일인지 금방 알아차린다. 그러나 조직이 경직되어 있다면 감히 반대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철학자 김형철 교수는 “리더는 일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리입니다. 그 결과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이렇게 물으세요. ‘나는 항상 옳은가’ ‘나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라고 말한다(저서 ‘최고의 선택’). 난관에 봉착할수록 서로 마음을 열고 지혜를 모아야 길이 보인다. 잘잘못만 따지면 출구는 보이지 않고 미로에 갇히게 된다.

신경림 시인은 “모두들 큰 소리로만 말하고/ 큰 소리만 듣는다/ 큰 것만 보고 큰 것만 보인다/ 모두들 큰 것만 바라고/ 큰 소리만 좇는다/(중략)/ 작은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고/ 아무도 듣지를 않는/ 작은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아무도 보지를 않는/ 그래서 작은 것 작은 소리는/ 싹 쓸어 없어져버린 아아/ 우리들의 나라 거인의 나라”라며 ‘거인의 나라’로 변해가는 현실에 경종을 울린다. 리더는 자신의 목소리만 크게 내거나 큰 소리만 따라가서는 전부를 알 수 없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도 듣고 큰 소리에 파묻히는 작은 소리도 경청해야 오류를 줄일 수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옳지 않을 수 있음을 깨닫고 인정하는 겸손과 용기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김병효 (국제자산신탁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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