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학의 문화읽기] 가을에는 정의를 알게 하소서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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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11   |  발행일 2019-10-11 제30면   |  수정 2020-09-08
진영논리에 갇혀 공정 상실
옳고 그름의 기준 달리 적용
틀린 것 보면서 정치권 외면
국민 들먹이는 꼼수에 분노
예술 힘으로 정의 일깨우자
[문무학의 문화읽기] 가을에는 정의를 알게 하소서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오늘 칼럼의 제목은 다형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를 패러디한 것이다. 김현승 시인은 이 작품을 1956년에 발표했다. 6·25가 휴전된 뒤 3년, 그때 사회도 참 어지러웠을 것이다. 배가 고팠을 것이고 혼란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시인이 ‘가을에는’을 제목으로 붙이고 3연으로 된 시에서 “기도하게 하소서……” “사랑하게 하소서……” “호올로 있게 하소서……”라고 노래한 걸 보면 희망은 있었던가 보다.

필자도 30년 전에 ‘가을에는’을 제목으로 3수 연작의 시조를 쓴 적이 있는데 “늘 가던 길 좀은 멀리 돌아가자” “오늘보다 잊힌 날을 생각하자” “그리운 그리움을 사랑하자”고 했다. 그런데 올가을은 이런 노래를 부르고 읽고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하나도 없다. 마구 불안하다. 정치로부터 오는 불안이 나를 엄습하고 있어 매우 힘든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이른 가을은 ‘타파’니 ‘미탁’이니 하는 태풍이 우리를 괴롭히더니, 시월의 공휴일과 주말은 집회로 어지럽다. 그것도 하나의 생각이 아니라 명백히 다른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이 경쟁하듯이 집회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우렐리우스가 ‘명상록’에서 “무엇을 행하는 것뿐 아니라, 무엇을 행하지 않음으로써 불의를 저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말이 생각나, 나도 집회에 나가야지 가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이 겹쳐오는 것이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의 발단은 우리 사회가 ‘정의(正義)’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의가 무엇인가? 사전을 펼쳐보면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라고 설명한다. 결국 ‘도리(道理)’라는 뜻인데 그럼 ‘도리’는 또 무엇인가? ‘도리’는 ‘사람이 어떤 입장에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 길’이다. 사람마다 입장은 다르지만 행해야 할 바름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정부의 입장에서, 법무부는 법무부의 입장에서, 검찰은 검찰의 입장에서, 그리고 국민은 국민의 입장에서 바른 길을 가면 된다. 정의가 무엇이냐는 문제는 이론적으로 다루어진 것이 많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비롯해서 무슨 적(的), 무슨 적 하면서 많이 논의되었다. 그러나 필자는 플라톤이 오래 전에 밝힌 “정의란, 저마다 자기 할 일을 다하고, 남을 방해하거나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란 말에 더 끌린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요구하고 있는 정의에 대한 불만은 한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진영(陣營)의 논리에 갇혀 진영 밖을 조금도 살피지 않으니까 진영 내에서만 옳고 진영 밖에서는 옳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답답하고 안타까운 진영논리에 갇혀 있으니까 같은 상황을 보는 정의의 기준이 다르게 적용될 수밖에 없다. 옳고 그른 것은 이론이 아니라 상황으로 판단된다. 우리 국민은 정의가 무엇인지를 다 알고 있다.

진영 밖에서 보면 틀린 것을 금방 볼 수 있다. 틀린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애써 그것을 보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은 국민의 할 일을 하고 있다. 정치권이 걱정해 주어야 할 국민이, 외려 정치권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모든 곳에 억지로 국민을 들먹이며 진영의 이익을 꾀하려는 꼼수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왼쪽으로 돌려놓은 의자도, 오른쪽으로 돌려놓은 의자도 똑바로 옮겨 놓자. 그리고 정의가 있는 정면을 바라보도록 하자. 예술이 이 일을 거들자. 예술의 임무가 세상의 악을 추방하는 것인데 정의롭지 않은 것은 악이지 않은가. 이 가을, 정의를 일깨우는 공연으로, 정의를 일깨우는 전시로 정의를 알 수 있고 느끼게 하자. 그리고 함께 기도하자. 세상의 모든 신이여, 하늘이여, 2019년 가을, 정의의 단풍이 삼천리강산에 불타게 하소서… 라고.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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