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연꽃 위에 올라앉는 거북처럼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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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20   |  발행일 2019-11-20 제30면   |  수정 2019-11-20
친구가 휘호한 글씨 ‘귀련’
거북이 1천년을 살게 되면
연꽃 위에 오른다는 이야기
사람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마음이 가벼워지면 좋을 것
[동대구로에서] 연꽃 위에 올라앉는 거북처럼
김봉규 문화부 전문기자

나이가 들면서 서로 나누는 이야기도 달라지고, 관심사도 변한다. 요즘은 주변 친척이나 친구 부모가 저세상으로 갔다는 소식을 접하는 일도 많아지고, 유명 인사들의 추락하는 모습이 각별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녹음 짙은 여름 같았던 젊은 시절과는 달리, 인생의 가을을 맞아 자신의 미래 모습을 생각하게 되어 달리 보이는 것이 많아지면서 그렇게 되는 것일까.

얼마 전 한 지인과 함께 클래식 음악 연주회에 갔다 왔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한동안 많이 우울했는데 연주회를 보고 나니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면서, 우울했던 이유를 들려줬다.

자신의 아버지가 큰 수술을 받고 병상에 누워 있어서 간호를 하게 되었는데, 예전과는 너무나 달라진 모습을 보게 되면서 마음이 더욱 우울해지곤 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그렇게 멋진 모습, 자신도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는데, 이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75세가 넘으면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지금은 예전의 모습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전혀 딴 사람이 되어 있는 현실이 서글퍼지고, 자신도 그렇게 될 것인가 하는 생각 등을 하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본인은 70세가 넘으면 어느 시점에 곡기를 끊어 저세상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주변에 고통과 실망을 주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연재기사 ‘산사미학’ 취재를 위해 지난 10월 중국 출장을 다녀왔다. 한학자인 친구도 같이 갔는데, 셋째날 쑤저우 근교 퉁리(同里)의 호수 근처에 있는 퉁리대반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사 후 차루(茶樓)인 달관루(達觀樓)에서 친구가 휘호를 하게 되었다. 중국 지인으로부터 점심과 차를 대접받은 친구가 답례로 붓글씨를 휘호하겠다고 하여 마련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친구는 세 점의 휘호 작품을 남겼다. 그 중 ‘귀련(龜蓮)’이라는 작품이 있었다. 큰 글씨로 ‘龜蓮’을 쓰고, 작은 글씨로 기해년 중양절에 지인인 진(陳) 선생의 장수를 축원하기 위해 쓴다는 내용을 적은 작품이다. 친구가 글을 쓴 후 ‘귀련’에 대해 설명을 했다. 거북은 1천년을 살고 나면 몸이 가벼워져 연잎 위, 연꽃 위에 올라 앉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 거북처럼 멋지게 장수하기를 축원한다고 말했다.

작품 중 ‘蓮’자가 ‘龜’자보다 약간 올라간 위치에 있는데, 이것을 진 선생은 연꽃이 물에 떠 있는 모습인 것 같아서 더 멋지다고 했다. 또한 보통 ‘귀수(龜壽)’라는 글귀를 휘호하는데, ‘귀련’은 처음 보는 글귀여서 더욱 좋다고 말했다.

이 글귀는 나 역시 처음 접하는데, 멋있는 글귀라고 생각되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도 ‘귀련’의 거북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거북이 1천년을 살면 연잎이나 연꽃에 올라갈 정도로 가벼워지는 것처럼, 사람도 나이가 들수록 탐욕이 줄고 맑아져서 깃털처럼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가볍게 이 세상을 하직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욕심과 번뇌가 여전하고 오히려 더해진다면 결코 ‘귀련’의 경지에 오를 수가 없을 것이다.

몸을 매일 단련하면 근육이 생기고 튼튼해지듯이, 마음도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점점 맑아져 가벼워질 것이다. 늙어 갈수록 몸은 마음대로 하기 어려워도, 오히려 마음은 마음 먹는대로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있지 않을까 싶다. 김봉규 문화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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