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사람에 대한 예의…한국 사회는 왜 인간의 가치를 외면하고 있는가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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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06   |  발행일 2020-06-06 제14면   |  수정 2020-06-06
현직 언론인 칼럼니스트 글 엮은 책
노동 격차·수저 계급론 등 다루면서
사회 모순 되돌아보는 계기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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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 삭발식을 하는 모습. 책 '사람에 대한 예의'에서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등을 예로 들며 가해자의 책임을 피해자의 책임으로 떠넘기려 하는 행태를 비판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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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 지음/ 어크로스/ 324쪽/ 1만5천원

'사람에 대한 예의'는 유명한 칼럼니스트인 현직 언론인의 글을 모은 책이다. '문제는 우리 안의 민주주의다' 등 많은 칼럼들을 공감하며 읽었다. 일부 견해가 다른 칼럼도 있었지만, 세대와 살아온 환경과 경험치가 다를진대 글쓴이와 독자의 생각이 100% 일치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JTBC 보도총괄인 저자는 서문에서 "한국 사회는 조직에 대한 예의, 국가에 대한 예의는 차리라고 하면서 사람에 대해선 건너뛰기 일쑤였다. 정말 중요한 순간에 사람은 고려의 대상에서 빠지곤 한다. 이제 사람에 대한 예의는 시대를 움직이는 정신이다. 그건 또한 세대 차원의 윤리이기도 하다"고 밝힌다.

저널리스트는 끊임없이 화두와 질문을 던지는 직업이다. 누군가는 사회의 병리현상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경고해야 이 사회가 보다 나은 쪽으로 갈 수 있지 않겠나. 이 책 역시 '사람'이라는 질문을 던진다. 바로 '왜 우리는 사람의 가치를 놓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책은 '1부 인간이라는 한계, 인간이라는 구원' '2부 어둠 속, 갑자기 불이 켜지면' '3부 사람에 대한 예의' '4부 각자도생이라는 거짓말을 넘어서' 등 총 4부로 이뤄져 있다. 각각의 주제에 따라 우리 사회의 모순, 편견, 법, 사건과 피해자, 노동현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노동 문제'가 책의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다. 현대 사회의 노동격차는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하는'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우선 '좀비 공정'이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저자는 24세의 청년 노동자 김용균이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설비 상태를 점검하던 중 벨트와 롤러 사이에 몸이 끼여 사망한 일을 설명하면서 '좀비 공정'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한다. "좀비 공정은 공식적인 작업 공정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위험한 공정을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수많은 이들이 좀비 공정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그 일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지 않은 채 '비가시화된 위험'을 살고 있는 것이다.… 좀비는 위험한 일상을 살아야 하는 현실의 우리를 은유한다. 살아 있지만 죽어 있는 사람들 속에서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좀비 공정' 중)

"하나의 유령이 전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긱 이코노미'(비정규 프리랜서 근로가 확산되는 현상)라는 유령이. '긱 이코노미'가 무서운 건 스스로를 착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허울뿐인 비정규직 프리랜서 노동자들. 그들은 한번 신으면 죽을 때까지 춤춰야 하는 '빨간 구두' 신세다."('스스로 착취하라 말하는 시대에 산다는 것' 중)

'헌법'에 대해선 이렇게 말한다.

"나는 '법전에 있는 대로 헌법이 지켜지고 있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헌법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다면 힘이 있다는 이유로, 돈이 많다는 이유로, 그 무수한 '갑질'이 왜 일어나는가. '유전무죄'와 전관예우, 그리고 금수저·은수저·흙수저의 계급은 또 무엇인가."('현실의 헌법에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것' 중)

'조직'에 대한 분석과 비판도 흥미롭다. 그의 말대로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는 조직에서 고뇌하는 직장인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더 좋은 명함을 가지려면 결국 윗분들 말씀을 잘 들어야 하고, 눈치가 빨라야 한다. 조직이, 아니 고위 조직원이 가고자 하는 목표의 울타리를 벗어나면 절대 안된다. 울타리 안에서 최대의 성과물을 내놓은 자만이 위로, 위로 올라갈 수 있다. 정부든, 기업이든 인사 시즌이 되면 모두 일손을 놓은 채 목을 길게 빼고 인사 발표만 기다린다. 그 모습은 가히 미어캣들을 연상시킨다."('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중)

"내 생각과 현실이 다르다고 해서 누구나 직장을 그만둘 수 있는 건 아니다. 일종의 절충 내지 타협을 하면서 살아가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늘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현실을 받아들이다 보면 한이 없다. 이것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이것까지 내주게 되면 이 직업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최후의 마지노선이 필요하다."('하찮아지느니 불편해지려고 한다' 중)

'동선을 조사할 때 보이는 것들'이란 제목의 글은 단편소설처럼 쓰여 있는데, 코로나19 사태를 살고 있는 지금 현재 상황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 감염병과 관련해 동선 조사를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글 속에서 감염병 때문에 조사를 받는 P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사회 소위 '지도층'의 삶과 마주하게 되고, 이상한 씁쓸함을 자아낸다.

책은 보다 화끈하고 분명한 '사이다' 글을 원하는 이들에겐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저자 역시 자신의 글에는 '주저흔'이 보인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면서 소외되고 있는 '사람'에 대해 찬찬히 되돌아보게 하고, 한국 사회의 '곪은 곳'을 찌르는데 이 정도의 날카로움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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