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다시 '한티재 하늘' 아래서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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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30   |  발행일 2020-07-30 제26면   |  수정 2020-07-30
척박해 수확량 적은 삼밭골
그래도 양반에게는 소작료
지배세력 이중성이 옥죄어
땅으로 나타난 불평등 구조
끊어내기 위해선 성찰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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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연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부동산으로 정신 사나운 요즘, 권정생의 시 '밭 한 뙈기'를 읊어본다. "사람들은 참 아무것도 모른다. 밭 한 뙈기 논 한 뙈기 그걸 모두 내 거라고 말한다. 이 세상 온 우주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내 것은 없다. (중략) 밭 한 뙈기 돌멩이 하나라도 그건 내 것이 아니다. 온 세상 모두의 것이다."

권정생의 글 중에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장편소설 '한티재 하늘'(1998)이다. 이 소설은 경북 북부지역을 배경으로, 1895~1937년 일어난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이름 없는 민중들의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의 다양한 서사를 아우르는 것은 한티재와 주변 골짜기, 마을들이다. 한티재는 경상도의 주요 도시였던 대구에서 안동으로 들어오는 첫 고개인데, 소설에서는 갑오농민전쟁, 을미의병, 일제 수탈과 3·1운동 등을 통해 자신의 삶터를 빼앗긴 사람들이 오고 가는 길목으로 그려지고 있다. 힘 없고 이름 없는 이들이 애국계몽기, 일제강점기 역사적 수난에 휩쓸려 이 고개를 넘어서 새로운 삶터로 옮겨갔다.

"이 조선땅 어디나 반반한 곳이면 양반님네들이 자리를 움켜쥐고 떵떵거리고 불쌍한 여름지기네는 구석자리로 밀려나 헐벗고 굶주려야 하는지 마음 아프실 게다. 그 착한 여름지기들은 제 땅 한 고랑 못 가지고 따비밭 한 뙈기도 양반님들께 도조를 내고 얻어 부쳤다. 삼밭골 사람들은 이래서 더 고달팠다." -'한티재 하늘 1'중에서

'한티재 하늘'의 첫 부분이다. "삼베 길쌈처럼 고달프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삼밭골은 척박한 산지라 농사를 지어도 수확량이 많지 않고 농사일도 더 고되다. 제대로 된 평지가 없기에 이곳에는 양반이 살지 않는데, 그럼에도 여름지기(농민)들은 수확한 곡식을 이고 지고 '하회마을'과 같은 먼 동네까지 가서 양반들에게 소작료로 바쳐야 한다. 이들의 삶이 고달픈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삼밭골의 자연 지리적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 계층에게 집중되는 땅, 그 '땅으로 나타나는 불평등한 지배구조'로 인해 그들의 삶이 더 힘든 것이다.

이처럼 '한티재 하늘'은 역사적 고난을 힘겹게 살아가는 민중을 옥죄는 지배세력, 양반들의 이중성을 질타하고 있다. 농민들은 소작료로 양반들에게 쌀을 빼앗기고, 빈궁기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자신의 아이들을 쌀 몇 되에 종으로 판다. 양반들은 후일 수십 배를 받고 그들을 되파는데, 이러한 양반을 향해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지체 높은 양반님들은 법을 들먹거리고, 삼강오륜을 내세우고, 공자님 맹자님 이야기를 하지만, 정말 그것들이 사람의 도리를 온다지로 다 했던가? 정말 그것들이 사람을 살렸던가?"

'한티재 하늘'에 그려진 이러한 모순과 불평등은 2020년 지금도 건재하고 있다. '영혼을 끌어모아' 내 집을 마련한다는 대한민국의 부동산 열풍. 부동산 정책 입안자들은 평범한 삶을 꿈꾸는 많은 이들이 '집'에 집착하는 현상만을 볼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불평등한 지배구조에 천착해야 할 것이다. '흙수저'와 '헬조선'에서 '영끌'과 '동학개미'로 드러나는 현상 이면에는 청년들이 체감하는 불평등과 불공정한 사회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부동산 정책은 '땅으로 나타나는 불평등 구조'를 끊어내기 위한 근원적인 (자기)성찰과 모색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권의 명분과 정책들은 '한티재 하늘'에서 '양반님네'들이 들먹이는 '법'이나 공허한 '삼강오륜'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배지연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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