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 정치칼럼] 방치, 무관심, 침묵한 대통령의 시간들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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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28   |  발행일 2020-09-28 제26면   |  수정 2020-09-28
북한해역 국민 3시간 방치
심야회의 후 6시간 무관심
대면보고 후 33시간 침묵
기저엔 김정은 눈치 보기
무력·무능·무지 3무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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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본부장

해양수산부 공무원인 우리 국민이 북한 해상에서 사살됐을 때 군과 청와대가 움직인 과정을 문재인 대통령 동선 중심으로 복기해 보자. 9월21일 오전 11시30분 실종된 어업지도선 1등 항해사가 북한 해역에서 발견된 건 28시간이 흐른 22일 오후 3시30분이다. 이후 우리 군은 각종 정보·첩보자산을 통해 상황을 실시간 파악했다. 문 대통령에게 첫 보고된 시간은 오후 6시36분. '남측 해상에서 실종된 우리 국민이 북측 해역에서 발견됐다. 북한군이 거리를 유지한 채 감시 중'이란 서면보고였다. 문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였고 지시를 내렸는지 청와대는 설명이 없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대통령이 행동을 취하지 않은 3시간여만인 밤 9시40분 북한군은 그 국민을 사살했다. 북한은 부인하지만 시신을 불태웠다는 군의 설명도 있었다. '대통령이 방치한 시간'이다.

밤 10시30분 국방부가 '우리 국민이 사살되고 불탔다'라고 청와대 등에 보고했다. 다음날인 23일 새벽 1시에 심야 안보관계장관회의가 열렸다. 1시간 반 동안의 회의엔 노영민 비서실장, 서훈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국정원장, 서욱 국방부 장관,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참석했다. 한밤중에 청와대에 불이 켜지고 비상이 걸렸는데 관저에 있었을 문 대통령은 뭘 했는지 국민은 깜깜이다. 심야회의가 진행 중이던 새벽 1시26분엔 문 대통령이 미리 녹화한 유엔 화상 기조연설이 전파를 탔다. 뜬금없이 '종전선언'을 강조한 연설이었는데, 본인이 그 시간에 그 영상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문 대통령이 우리 국민 피살과 시신훼손을 대면보고 받은 건 피살 후 11시간, 청와대에 보고된 지 10시간, 심야회의가 끝난 지 6시간 만인 오전 8시30분이었다. 그전에 상황이 어떻게 진전됐는지, 북한 해역의 국민은 무사한지 먼저 물어본 흔적도 없다. '대통령이 관심 없었던 시간'이다.

북한군의 만행을 보고받은 직후인 오전 11시엔 군 장성 진급·보직 신고식이 열렸는데 우리 국민 피살에 대해선 한마디 없이 '한반도 평화'만 얘기했다. 그 상태로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언론에서 피살 관련 보도가 나오기 시작하자 24일 오전 11시에야 국방부가 언론 브리핑을 갖고 북한 규탄 입장문을 발표했다. 온 국민이 충격에 빠져 분노하고 12시에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열렸다. 그런데 그 회의는 서훈 실장이 주재하고 문 대통령은 다른 곳을 방문했다. 경기 김포에서 디지털 뉴딜 문화콘텐츠산업 전략 보고회를 주재했는데, 행사에선 아카펠라 공연도 관람했다. 할 것 다하고 청와대로 돌아온 오후 5시15분에 "충격적 사건" "매우 유감"이란 대통령의 말을 대변인이 대신 전했다. '충격적 사건'이라고 느끼는데 대면보고를 받은 이후부터 쳐도 33시간이 걸렸다. '대통령이 알고도 침묵한 시간'이다.

대한민국 국가공무원이기도 한 국민이 적군에게 피살되고 시신이 불타는데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은 방치하고, 관심을 갖지 않고, 사태를 다 들은 뒤에도 침묵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른 사정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청와대가 설명한 대로라면 그렇다. 국민생명을 지키는데 무력하고, 위기관리에 무능하고, 사안의 심각성에 무지한 정권이다. 그 모든 기저엔 '김정은 눈치 보기'가 있음이 입증됐다. 김정은의 "미안하다"라는 메시지 한 줄에 "계몽군주"(유시민)란 칭송이 나왔으니….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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