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병역 이야기

  • 백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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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28   |  발행일 2020-10-28 제27면   |  수정 2020-10-28

얼마 전까지 높은 벼슬아치 자녀의 병역 문제가 나라를 흔들었다. 되돌아보면 사회를 시끄럽게 만든 병역 문제의 중심에는 항상 유명 인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정치권은 기본이고 정부 기관에 몸담은 고위층, 시민단체, 종교계까지 곳곳에서 병역 문제가 불거졌다. 어쩌다가 국민의 기본 의무이자 국민 희생을 담보로 하는 병역은 기피하면서 나라와 국민을 항상 앞세우는 요지경에 이른 것인지 안타깝다.

역사를 꼼꼼히 살펴보면 군대가 존재하지 않은 시대는 없었다. 삼국 시대에는 전쟁이 발발하면 문무를 겸비한 귀족이 먼저 전쟁터에 나가 싸웠다. 귀족의 자녀는 당연히 부모를 따라 전쟁터로 나가면서 지배층의 군역 문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비교적 전쟁이 적었던 고려 시대에는 오히려 국방력이 약화됐다. 조선 시대에는 당연하게 여기던 군역 정신이 무너져 지배층과 부호는 군역 기피에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대표적 사례가 군역을 면제하는 대신 무명이나 베를 대신 받는 군포제(軍布制)다. 군포보다 낮은 가격에 다른 사람에게 군역을 맡기는 방군수포제(防軍收布制)의 기록도 있다. 돈 많은 양반과 부호가 돈을 주고 군역을 대신할 가난한 사람을 찾기 시작하면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돈을 받고 군역을 대신 치르는 대립군(代立軍)이라는 새로운 직업도 생겼다. 군역 기피를 위해 승려가 되거나 향교에 들어가 유생이 되는 고관대작 및 부잣집 자녀가 늘었고, 임진왜란 이후에는 4만 명이 넘는다는 문헌도 존재한다. 벼슬아치 자녀의 병역 기피 현상은 역사적으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기 힘든 후진국형 중병이다.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고질병이다. 부자나 벼슬아치의 잘못된 병역 기피 풍조는 국가 안보와 국민 정서를 위협하는 심각한 요인이 된다. 군소리 한마디 없이 병역 의무를 성실하게 지킨 선량한 국민을 욕되게 하고 있다. 병역 특혜는 국가를 망치고 국민을 서럽게 만드는 지름길이나 다름없다. 백종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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