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홍원화 경북대 총장에 바란다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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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24   |  발행일 2020-11-24 제22면   |  수정 2020-11-24
경북대생 해마다 자퇴 늘어
지역거점국립대 명성 무색
富·일자리 수도권 집중 원인
"답 없다" 소극적 자세 버리고
재학생에 비전 제시 노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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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편집국 부국장

'KOREA No.1 UNIV'. 경북대 산격동 캠퍼스 대운동장 스탠드 벽면에 쓰여 있는 글귀다. 영문 표기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의 이니셜을 딴 패러디 문구. 누가 지었는지 기발하다. 짐짓 경북대의 '자부심'을 나타내려는 요량이다. 근데 학생들의 반응은 다소 냉소적이다. 학교 측이 오버를 해도 한참 오버했다는, 'KOREA No.1'이라고 여기는 학생은 시쳇말로 '1(하나)도 없다'는 표정이다.

지역거점국립대, 경북대를 다시 생각한다. 불편한 현실과 마주한다. 얼마 전 '경북대 자퇴생 증가' 보도는 대학의 자존감에 상처를 주고도 남았다. 지난 5년간 자퇴한 경북대생이 3천명쯤 된다니…. 자퇴생 가운데 95%는 '인 서울(In Seoul)' 대학 진학을 위해서였다. 대구·경북을 이끄는 주축(主軸) 가운데 한 곳인 경북대의 민낯이다.

아~옛날이여, 경북대에도 호시절(好時節)이 있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인 서울' 대학이 결코 부럽지 않았다. 지방 국립대 가운데서도 톱이었다. 성적 우수생이 알아서 찾아왔다. 'SKY'는 몰라도, 이른바 '서성한이' '중경외시' '건동홍숙' 등 다른 '인 서울' 사립대는 애써서 갈 이유가 없었다. 서울 간판을 달지 않아도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실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눈부셨던 경제성장의 시대, 대구에 남아도 걱정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대학의 세계'는 비정하게 변했다. 언제부턴가 부·권력·일자리의 수도권 쏠림이 통제불능에 이르렀다. 이른바 '수도권 블랙홀'. 급기야 지역 학생들에겐 '인 서울' 대학 입성이 인생의 목표가 됐다. 나만 지역에 남아 갖게 될 열패감, 왠지 2~3류 인생이 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다. 역대 정부가 내놓은 거점 국립대 육성책은 간에 기별도 안 갔다. 외려 정부는 서울 사립대에 더 많은 지원을 했다. 그러는 사이 과거 눈길조차 안 준 서울지역 중위권 사립대가 명문대에 올랐다. 억울하지만 경북대는 지금 이들 대학보다 못한 취급을 받고 있다.

탈(脫) 경북대 러시. 마냥 넋 놓고 지켜볼 일인가. 이 대학 교수들의 얘기를 들어보자. "안타깝다" "수도권이 모든 걸 빨아들이는 구조에선 해법이 없다"가 대체적인 의견이다. "서울에 가도 딱히 취업이 잘되는 것도 아닌데…"라며 자퇴를 이해할 수 없다고도 한다. 일견 공감한다. 하지만 안일하고 무책임한 생각 아닌가. 크게 답답할 게 없다는 소리로 들린다. 사실, 학령인구 감소 시대에도 경북대는 느긋하다. 아궁이 불 꺼지면 윗목(지역 사립대)부터 식으니 아랫목(경북대)은 아직 괜찮다는 식이다. 고교 대학입시설명회도 한 예다. 경북대에서 온 관계자들이 제일 무덤덤하다는 게 지역 고교 교사들의 솔직한 얘기다. 교사와 학생을 '잡아놓은 물고기' 대하듯 말이다. 이쯤하면 '원서 내고 싶으면 내고, 내기 싫으면 말고'다.

홍원화 제19대 경북대 총장이 오늘 취임식을 갖는다. 기대가 크다. 덧붙여 당부한다. 무엇보다 재학생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 주시라. 정부에 요구하시라. 공공기관 채용·거점국립대 지원 확대 등 재학생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이는 기본이고 당연한 일이다. 못지않게 중요하고 시급한 게 있다. 재학생들과의 진솔한 소통이다. 재학생들과의 대토론회를 여시라. 학생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고, 분명한 비전을 제시해 주시라. '학교가 학생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홍 총장을 비롯한 경북대 교수들의 분발을 기대해 본다. 재학생의 '인 서울'행이 더는 줄을 잇지 않는, 경북대가 다시 전국 '톱 5' 대학으로 우뚝 서는 그날까지.
이창호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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