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GIST 교수들의 '4차 산업혁명과 인류 이야기'] 인간 장기와 가장 닮은 '오가노이드' 바이오인공장기 향한 첫 걸음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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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2-19   |  발행일 2021-02-19 제21면   |  수정 2021-04-22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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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태 교수 (뉴바이올로지전공)

의사이며 생명과학자인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정영태 교수는 1975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에서 인턴을 수료했다. 이후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에서 박사를, MIT와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이수했고, 스탠퍼드대에서 전임강사로 근무하다가 2018년 DGIST에 부임했다. 정 교수는 자신의 의학과 생명과학 경험을 종합해 줄기세포생물학과 암생물학 분야의 기초연구부터 중개연구 및 임상연구에 걸쳐 세계적으로 선도적인 연구를 진행하며 다수의 논문을 통해 줄기세포 및 암 연구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자리매김했다. DGIST에 부임하며 대구로 이사 온 정 교수는 휴일이면 앞산, 비슬산, 화왕산 등을 등산하며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고 호연지기를 함양하고 있다.

무릎 관절 등 신체 물리적 기능 제외한
혈관·신경의 세포기능 회복 위해선
실제 장기 같은 바이오인공장기 필요

지난 10년간 과학자들 끊임없는 노력
폐·뇌 등 '오가노이드' 만드는데 성공
장기 미세구조 재현하는 진일보 이뤄


"'장기이식'이라 쓰고 '기다림'으로 읽는다." 어느 보건의료신문에서 쓴 문구다. 장기이식 수요에 비해 기증자는 10분의 1 수준이다 보니 해마다 장기이식 대기자 수가 2천~3천명씩 늘어 지난해 4만명을 넘어선 애 타는 상황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묘사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필요로 하는 장기를 공여자가 없어도 뚝딱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퇴화되고 닳아버린 장기를 대체하기 위한 인공장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돼 왔다. 인공심장이나 치아 임플란트, 인공관절 등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물리적 구조를 담당하는 장기는 기계적인 구조물로 대체하기 비교적 용이하나, 장기 내 세포의 특수한 기능을 필요로 하는 장기는 기계적인 인공 장기로 대체하기 어렵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줄기세포를 기반으로 한 세포치료와 바이오 인공장기다.

줄기세포는 자기복제가 가능한 모든 미분화된 세포를 가리킨다. 일반적인 세포들은 세포분열을 하면 자신과 다른 더욱 분화된 딸세포 둘을 만들며 증식을 멈추지만, 줄기세포는 딸세포를 하나 만들면서 자신과 동일한 줄기세포를 다시 만들어내기 때문에(자기복제) 이론적으로는 필요로 하는 딸세포를 무한정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가장 용이한, 손상된 장기에 줄기세포를 넣어주어 필요로 하는 세포를 만들어내 장기의 기능이 회복되게 하는 줄기세포 치료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돼 왔다. 그런데 중간엽 줄기세포를 활용한 퇴행성관절염 치료제 등이 개발되긴 했지만, 많은 경우 이식한 줄기세포의 대부분이 새로운 미세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는 것이 관찰되었다. 줄기세포 못지 않게 미세환경도 중요했던 것이다.

실제 장기와 똑같거나 적어도 유사한 크기와 세포 조성을 가진 바이오인공장기는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은 지난 10년간 바이오인공장기를 향한 첫 디딤돌로서 과학적으로 중요한 진일보를 이루었는데, 소위 '오가노이드'라는 것을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오가노이드(Organoid)는 장기를 뜻하는 'Organ'에 휴머노이드(Humanoid), 안드로이드(Android) 등의 단어에 사용되는 것처럼 비슷함·유사함을 의미하는 접미사 '-oid'가 붙은 단어로 쉽게 말하면 '장기유사체'라는 말이다. 줄기세포를 특정 조건에서 배양을 하면 수백 마이크로미터에서 수 밀리미터 크기의 3차원 구형 구조물로 자라는데, 무작위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줄기세포가 원래 속했던 장기의 현미경적인 미세 구조를 그대로 재현한다. 그래서 '미니장기'라고도 하는데, 현재까지 폐, 장, 뇌, 간, 근육 등 많은 기관의 오가노이드가 만들어졌다.

오가노이드는 사람의 실제 장기의 미세구조를 재현하기 때문에 사람의 각 조직특이적인 줄기세포를 찾고, 질병을 모델링하고, 신약을 스크리닝하는 등등에 매우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사람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할 수 없는 윤리적인 이유로 현재까지도 쥐·개·돼지 등의 동물을 이용해 생체실험을 먼저 진행하는데, 동물과 사람 간의 종(種) 간 차이로 인해 동물에서는 안전하고 효과가 있는 것으로 판명된 약물이라도 사람에게서는 효과가 미미하거나 부작용이 상당한 것으로 판명돼 개발 도중에 폐기된 약물들의 사례는 가히 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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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유아세포로 둘러싸인 폐오가노이드. 초록색 형광으로 염색된 섬유아세포가 빨간색 형광으로 염색된 폐오가노이드를 둘러싸 보라색으로 보이고 있다.


그런데 사람의 장기와 구조가 유사한 오가노이드를 활용하면 약물 개발이나 연구의 초기부터, 물론 생체는 아니지만 인체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모델링하고 테스트할 수 있는 커다란 장점이 생긴다. 그래서인지 재작년 5월 영국의 대표적인 생명과학연구소 중의 하나인 생어 연구소(Sanger Institute)에서는 오가노이드, 세포주, 차세대 유전자염기서열 분석 등을 통해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이유로 동물실험실을 폐쇄하기도 했다. 필자의 생각에는 아직 성급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오가노이드 기술의 잠재적인 중요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재까지 개발된 오가노이드는 매우 작은 초소형 크기이고 대부분 한 가지 조직으로만 이루어져 있어 여러 다양한 조직의 세포들이 복잡하게 정렬된 인체의 실제 장기에 비하면 매우 원시적인 수준이다. 하지만 '미니장기'의 개발이라는 첫 디딤돌을 내딛은 현재, 많은 과학자들이 여러 조직의 세포들이 실제 장기처럼 어우러져 공존하는 한 단계 더 발전된 '다종세포 복합 오가노이드'의 개발을 위해 열심히 연구하고 있으며, 필자의 연구실에서는 최근 실제 폐처럼 섬유아세포가 폐포 오가노이드를 감싸는 복합 오가노이드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크기 면에서도 3D 바이오프린팅 및 기계공학적 기술과의 접목을 통해 보다 큰, 가시적인 크기의 오가노이드를 만들려는 연구가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아마도 혈관, 신경, 연부조직 그리고 장기의 핵심기능을 담당하는 세포들이 인체의 현미경적 구조처럼 서로 정렬돼 어우러진 수 ㎝ 크기의 미니장기가 만들어지면, 질병의 모델링과 신약의 효과 평가 등에 있어 인체를 제대로 모사할 뿐만 아니라 실제 바이오인공장기의 개발이라는 궁극의 목표가 가시적인 거리로 다가오지 않을까 한다.

물론 실제 바이오인공장기의 개발까지는 아직 요원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폴로 우주선을 통한 인류의 달 착륙이 여전히 요원하긴 하지만 꿈만 같던 우주여행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역사적인 첫 디딤돌과 같은 사건이었던 것처럼, 오가노이드를 필두로 바이오인공장기를 향한 인류의 꿈은 어느덧 공상 속의 세계에서 밖으로 나와 미래의 언젠가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오가노이드: 장기를 뜻하는 'Organ'에 휴머노이드(Humanoid), 안드로이드(Android) 등의 단어에 사용되는 것처럼 비슷함·유사함을 의미하는 접미사 '-oid'가 붙은 단어로 쉽게 말하면 '장기유사체'라는 말이다. 실제 장기의 구조와 기능을 재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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