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광장] 어머니

  • 곽동협 운경의료재단 곽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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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07   |  발행일 2021-05-07 제23면   |  수정 2021-05-07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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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동협 운경의료재단 곽병원 원장

5월이 되면 가장 생각나는 분은 바로 어머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엄마'라고 했을 때 제일 먼저 '공부'가 생각난다고 한다.

수년 전 본원 의사들 회식 때 아이들 공부를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운 적이 있다. 효율적인 학습지도법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왔으나 필자는 "그런 것 다 필요 없고, 그저 엄마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고 마무리했다. 요즘 아이들 훈육과 공부 지도는 대부분 엄마가 하고 아버지는 그저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사람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엄부자모'라 하여 엄한 아버지에게 혼나면 어머니가 자애롭게 감싸는 것이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이었는데, 요즘은 그 반대가 된 듯하다.

가정교육은 관심조차 없고 오로지 아이들 공부에만 '올인'하는 수많은 '헬리콥터 맘'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공부와 입시에 짓눌려 사는 요즘 아이들에게 '엄마'는 본의 아니게 스트레스의 주범이 되고 있다. 필자의 질녀가 중학교에 다닐 때 급우 중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계모와 사는 아이가 있었는데, 계모는 공부하라고 닦달하지 않고 용돈도 넉넉히 주어 오히려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는 에피소드에서 시사하는 바 적지 않다.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공부 스트레스로 시달리며 자라는 요즘 아이들이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 과연 '엄마'를 어떻게 기억할까.

필자의 어린 시절 모자관계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어머니도 속으로는 애가 탔겠지만 요즘 엄마들처럼 집요하게 공부를 강요하지는 않았음은 물론 사고를 쳐도 항상 따듯하게 감싸주셔서 학창 시절 어머니는 늘 든든한 울타리였다. 지금도 어머니 생각만 하면 마음이 한없이 푸근해진다.

우리는 '어머니'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지고 마음이 따듯해 옴을 느낀다. 왜 그런가. 낳아 주고 길러주신 데다가 자식의 모든 잘못까지 다 받아주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우리가 생겨난 고향이고 자연이며 땅이요 바다이기 때문이다. 또한 옛 추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필자에게도 어머니와 함께한 추억들이 많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인턴 시절, 어머니를 모시고 단 둘이 다녀 온 제주도 휴가여행이다. 그때 흐드러지게 핀 유채꽃과 함께 어머니께서 흐뭇해하시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뒤 누님들에게 들었는데 생전에 그 여행 이야기를 여러 차례 자랑삼아 하셨다고 한다.

말년에 어머니는 신체의 모든 기능이 저하되어 몇 년간 고생을 하셨다. 눈은 보이지 않았고 귀도 어두워졌으며 정신까지 흐려진 상태였다. 당시 어머니 댁을 방문하여 종종 식사를 같이 하곤 했는데, 하루는 필자가 밥을 다 먹어 숟가락으로 밥그릇 긁는 소리가 나자 어머니는 간병인에게 밥을 더 주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눈이 보이지 않고 정신이 희미해져가면서도 자식을 위하는 마음만은 마지막까지 남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렇듯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어머니'는 푸근한 마음의 고향 같은 '그 무엇' 이상이다. 탈무드에 "하나님의 대리자로 어머니를 보내셔서 우리를 돌보고 지키게 하셨다"는 글귀가 있다. 그런데 갑작스레 놀랄 일이 생기면 서양 사람들은 '오 마이 갓(god)'이라고 하는 데 비해 우리들은 '엄마'라고 한다. 서양인의 '신(god)'이 우리나라에 오면 '엄마'가 되는 것이다.

어버이날 어머니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싶어도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돌이켜 보면 어머니가 살아계시는 것만으로도 큰 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전 인자한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셨던 나의 어머니! 5월이 되면 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립다.
곽동협 <운경의료재단 곽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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