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표절에 관대한 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 여택동 영남대 무역학부 교수
  • |
  • 입력 2021-05-14   |  발행일 2021-05-14 제22면   |  수정 2021-05-14 07:19
장관 후보 청문회서 드러난
논문표절 및 연구윤리 위반
선진국, 엄격한 처벌과 징계
표절행위 관대하게 치부시
창의력·학문발전 장애 커져

2021051301000381000014541
여택동 영남대 무역학부 교수

지난 4·7 보궐선거 이후 대통령께서는 국무총리와 5명의 장관을 교체하는 중폭의 개각을 단행하였는데, 그중 3명의 장관 후보자에 대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나타난 적지 않은 흠결로 인하여 야권이 청문보고서 채택을 거부하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 자녀의 복수 국적, 세금 탈루, 국가연구비로 가족 동반 해외여행, 논문 표절 등 다수의 탈법 행위와 연구윤리 위반 비판에 직면해 있다.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하여 장관 후보자는 남편과의 공동논문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며, 제자의 석사학위 논문과 학술지 논문 중복은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사실 동일 분야에 종사하는 부부 교수나 연구원이 많은 미국과 유럽의 경우 남편 또는 아내와의 공동연구는 일반적이며, 미발표 석·박사 학위논문을 지도교수와 함께 학술지 논문에 게재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연구윤리 측면에서 남편과 아내가 실제 공동연구를 수행했어야 하며, 지도교수가 제자의 학위논문에 핵심 아이디어 제공이나 논문 작성에 상당한 기여를 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분명히 연구윤리 위반이다.

필자가 공부했던 대학원에도 부부 교수가 있었다. 남편은 명문대학인 유펜의 종신교수(tenure)직을 받았으나 아내가 탈락하는 바람에 이직해 온 경우였다. 당시 필자는 어리석게도 "남편이 아내를 본인 논문에 공동저자로 올려 줬다면 부부 모두 명문대학의 종신교수가 되었을 텐데"라고 잘못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인사청문회에 나타난 의혹만을 미루어 판단한다면, 타 대학의 교수인 남편이 아내의 제자 논문 18편에 공저자로 등장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며, 그중 제자의 학위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 제1저자로 등장하는 것은 백번 양보해도 무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서구 선진국에서는 논문표절과 연구윤리 위반에 대하여 매우 엄격한 처벌과 징계를 부과하고 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면, 대학원 동료의 과제를 베꼈다가 주임교수로부터 전학·퇴출을 강요당한 경우, 대학원 과제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 기존 논문들을 짜깁기(표절)했다가 F학점 처분을 받는 경우, 학위논문 작성과정에 기존 논문의 표 양식을 베꼈다가 지도교수로부터 추방당한 경우, 동료 교수가 수집해 놓은 데이터를 허락 없이 사용했다 징계 받은 경우 등 비교적 사소한 과제 베끼기부터 심각한 표절까지 다양하다.

최근 국내 학계에서도 논문 표절이나 연구윤리 위반에 대하여 점점 처벌이나 징계가 엄격해지는 추세에 있다. 지난해 필자가 참여한 타 대학의 연구진실성위원회 조사의 경우, 해외 연구보고서를 표절하여 논문으로 게재하고 부실한 해외학회에 발표하여 징계절차가 진행 중이다. 다른 나라의 언어로 발표된 연구보고서의 경우 학계에 잘 알려지지 않는다는 맹점을 이용하여 표절하는 행위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지난 10일 대통령께서는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3명의 장관후보자의 능력이 탁월하여 작은 흠결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인재이며, 특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여성 과학자의 롤모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결단코 난센스다. 특히 창의력이 존중받는 과학기술계에서 논문 표절이나 연구윤리 위반 의혹은 사소한 흠결이 아니라 중대 결격 사항이다. 막대한 국가 연구비를 배정하는 업무를 맡은 과기부 수장이 연구윤리 위반과 연구비 부정 의혹이 있다면, 누가 정부를 믿겠는가. 논문 표절이 관대하게 치부되는 나라는 학문 발전에도 장애가 클 것이고, 절대 선진국이 될 수도 없을 것이다.
여택동 영남대 무역학부 교수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