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대구 문화예술의 품격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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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7-14   |  발행일 2021-07-14 제26면   |  수정 2021-07-14 07:14
대구 방천시장 김광석거리에

지난해 봄 비치해 놓은 피아노

행인들 많이 애용하고 있지만

조율이 안 되고 있어 아쉬움

대구 문화품격 떨어뜨리는 일

[동대구로에서] 대구 문화예술의 품격
김봉규 문화부 전문기자

2010년 5월,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피아니스트 백건우 독주회가 열렸다. 멋진 연주였다.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나더라는 관객도 있었다. 전반부 연주가 끝나고 휴식시간에 귀빈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백건우의 부인 윤정희씨가 들어와 관장을 찾았다. 그녀는 관장에게 피아노를 조율하기 위해 조율사를 찾으니 돌아가 버리고 없다고 말하며, 황당하고 실망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연주회가 끝날 때까지 조율사가 대기하는 것은 기본이니 같은 실수가 다시는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정작 회관 관계자들은 대구는 조율사들이 항상 일찍 돌아가 버린다며 별일 아니라는 듯한 반응이었다.

지난달 24일 저녁, 김광석거리가 있는 대구 방천시장 식당에서 지인들과 시간을 보냈다. 식당 앞 길가에 피아노가 한 대 놓여있었다. 피아노 위는 가리개를 설치하고, 옆에는 간단한 무대도 만들어 놓았다. 오후 7시부터 세 시간 정도 있었는데, 그 피아노를 연주하며 즐긴 이들이 최소한 네 팀은 되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전공한 지인들은 연주한 사람들 중 피아노를 잘 치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아노를 정기적으로 조율해 주면 참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갖다 놓은 지 1년이 넘었지만 한 번도 조율하지 않은 것 같은데, 피아노를 정기적으로 조율하고 그 사실을 알리는 안내판을 곁들여 놓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지난달 11일 저녁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겨울날의 환상'이라는 주제의 대구시립교향악단 정기연주회가 열렸다.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과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제1번'이 연주됐다. 피아니스트 이미연이 멋지게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자 관객들의 큰 박수가 이어지고, 이미연은 앙코르로 두 곡을 더 연주하며 화답했다. 후반부에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제1번' 연주가 끝나고 지휘자 줄리안 코바체프가 무대에 다시 나와 관객의 환호에 답하고 있는데, 갑자기 무대 위의 대형 스크린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관객이 어리둥절해하는 가운데 스크린이 멈추면서 화면에 권영진 대구시장의 얼굴이 등장해 본인을 알리는 인사를 시작으로 영상 메시지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화면을 가득 채운 권 시장의 얼굴이 등장하는 순간 관객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영상메시지 내용은 미얀마 사태와 관련, 대구시가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인 점과 연결하면서 미얀마의 인권과 평화를 지지하고 응원하자는 내용이었다. 클래식 음악 연주에 빠져든 감흥 속에 박수를 보내는데, 느닷없이 대구시장 얼굴이 등장해 연주 음악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를 하니 관객의 기분이 어떠했겠는가. 만석의 관객이 점잖아서 한번 헛웃음을 보내는 것으로 그쳤으나,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영상메시지 후 메시지와 관련된 곡이 짧게 연주됐다.

대구시나 대구콘서트하우스 관계자들이 이런 일은 없도록 했어야 한다. 사정상 불가피하게 영상메시지를 보내야 했다면 영상을 좀 품격 있게 만들었어야 할 것이다. 미얀마 사태를 공감하게 하는 영상을 품격있게 잘 만들고, 관객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했더라면 관객의 실망감은 덜했을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이다. 대구 문화예술의 품격은 이런 데서도 좌우된다.
김봉규 문화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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