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디지털 복제 시대의 영화

  • 한종해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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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20 08:22  |  수정 2021-10-20 08:23  |  발행일 2021-10-20 제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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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해〈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산업기술과 교통의 발달로 인한 예술의 변화를 얘기했다.

그에 따르면 사진술과 같은 대량 복제와 철도와 같은 운송의 발달은 예술작품의 아우라, 즉 유일성과 현장성이라는 엄숙성을 깨면서 예술의 대중화를 촉진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의 통찰 이후에도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했고, 그의 시대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 기술의 발달이 새롭게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이런 시대의 변화가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으로 드러난 것처럼 보인다.

그에 따르면, 실재의 대체물인 파생 실재, 즉 시뮬라크르가 실재를 대체해 가는 시뮬라시옹 현상이 현대의 모습이며 이 속에서 대중은 사유를 멈추고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장 보드리야르가 예견한 이런 가상이 현실을 압도하는 세계에 대한 인식은 '워쇼스키 형제→남매→자매'의 영화 '매트릭스'뿐만 아니라 몇 년 전에 방영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과 같은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가 되었다.

어쩌면 이런 현상은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메타버스 기술이 상용화되면 더욱 증폭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려나. 이런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 기술의 변화로 인해 '영화' 역시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말도 많긴 했지만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영화 제작이 보편화하면서 영화와 동의어였던 '필름'이라는 용어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같은 이유로 다양한 크기의 필름 롤을 영사기에 끼우고 재생하는 고숙련 기술자인 영사기사가 사라지고 누구나 컴퓨터 프로그램을 간단히 조작만 하면 극장에서도 영화를 재생할 수 있게 되었다.

초고속 인터넷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고화질의 영상도 컴퓨터를 통해 재생할 수 있게 되었고, 주문형 영상 공급 기술인 VOD와 스마트 기기에서의 영상 재생 기술인 OTT에 힘입어 이제 굳이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가지 않아도 된다.

더구나 유튜브 등의 동영상 공급 서비스가 발달하면서 누구나 자신이 제작한 동영상을 공유할 수 있게 되고 심지어 방송사에서도 방송 영상을 공유하게 되면서 이제 영화, 방송 영상, 1인 미디어 동영상의 경계 자체가 모호해졌다. 어쩌면 영화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던 '무비'나 '시네마' 역시 낯설게 느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한종해〈대구경북영화영상 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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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해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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