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규 기자의 '지구촌 산책'〈17〉중국 스좌장 융흥사(하)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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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1-17   |  발행일 2022-01-17 제21면   |  수정 2022-01-17 08:14
"神이 보낸 통나무로 만든 불상에 여성들 속내 털어놔"
융흥사 미륵상(통나무)
중국 스좌장 융흥사 미륵불상. 높이가 7.4m나 되는데 산시성에 있는 오대산의 통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불교 사찰 문화재 중 매우 희귀하고 이색적인 문화재 중 하나는 윤장대(輪藏臺)가 아닐까 싶다. 회전식 불경 서가라고 할 수 있는 이 윤장대는 보통 팔각형으로 되어 있다. 그 안에 불경을 넣어두는데, 이 윤장대를 손으로 돌리면 안에 있는 불경을 한 번 읽은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옛날 윤장대로는 경북 예천 용문사의 대장전(大藏殿)에 있는 한 쌍의 윤장대가 유일하다. 고려 시대 12세기에 제작되었다.

옛날에는 불경이 일반인들에게 매우 어렵게 생각되고, 시간이 없어서 읽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들을 위해 만든 윤장대는 중국 양(梁)나라 때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전륜장(轉輪藏)·전륜경장(轉輪經藏)이라고도 한다.

윤장대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희귀한 문화재다. 중국 스좌장(石家莊) 융흥사에서 고색창연한 대형 전륜장을 볼 수 있었다. 용문사 윤장대가 영향을 받았다는 전륜장으로, 북송 때(11세기) 만들어졌다.

용문사의 윤장대와 대장전이 2019년 12월 국보 제328호로 지정됐다. 각각 보물 제145호와 제684호로 지정되어 있던 것이 통합돼 한 건의 국보로 승격한 것이다.

대장전과 윤장대는 고려 명종 3년(1173년)에 발생한 김보당의 난을 극복하기 위해 조응대선사가 발원하고 조성했다. 고대 건축물로는 매우 드물게 발원자와 건립 시기(1185년), 건립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대장전과 윤장대는 처음 건립된 이후 여러 차례 수리됐다. 최근 동쪽 윤장대에서 확인된 1625년에 쓴 묵서명과 건축 양식을 미뤄볼 때 17세기에 수리돼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용문사 윤장대는 대장전 내부 양쪽에 좌우 대칭적으로 하나씩 설치돼 있다. 8각형의 전각 형태로 제작되고, 중앙의 목재기둥이 회전축 역할을 해 돌릴 수 있도록 했다. 8각 면의 창호 안쪽에 경전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특히 동쪽 윤장대는 교살창, 서쪽 윤장대는 꽃살창으로 만들어 간결함과 화려함을 대비시킨 점, 음양오행과 천원지방(天圓地方)의 동양적 사상을 의도적으로 담아 조형화시켰다는 점에서 뛰어난 독창성과 예술성이 인정된다. 또한 그 세부 수법 등에서 건축, 조각, 공예, 회화 등 당시 기술과 예술적 역량이 결집된 종합예술품이라는 점에서도 가치가 크다.

이 윤장대는 한·중·일에서 현전하는 유일의 쌍륜장(2개의 윤장대)으로 절대적 희소성을 지니고 있어 더욱 그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높이 4.2m, 둘레 3.15m.

회전식 불경서가인 팔각형 윤장대
기술·예술적 역량 쏟은 종합예술품
예천 용문사 전륜장이 영향 받기도


◆용문사 윤장대에 영향 끼친 융흥사 전륜장

융흥사 전륜장은 중층 구조로 지은 전륜장각 안에 있다. 높이가 10m는 될 것 같았다. 모양은 용문사 윤장대처럼 8각형의 목재 전륜장이지만, 몸체의 크기는 용문사 윤장대의 5~6배는 되어 보였다. 어른 다섯 명 정도가 팔을 벌려야 감싸 안을 수 있을 정도다. 지금은 가동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았지만, 만들 당시에는 세 살짜리 아이도 돌릴 수 있었다고 한다.

움직이는 거대한 불경 서가인 이 전륜장은 맨 아래 부분인 장좌(藏座), 불경을 넣는 장신(藏身), 그리고 지붕 부분인 장정(藏頂)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8각 구조로 되어 있다. 중층 구조로 된 지붕 중 아래 지붕까지는 8각으로 되어있고, 그 위 맨 위 지붕은 원형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몸통에 여닫을 수 있는 문이 있고, 아래와 위는 회전이 가능하도록 그 중심축이 바닥과 지붕(구조물)에 연결되어 있다.

규모는 다르지만 전체적인 구조나 모양은 용문사 윤장대와 비슷함을 알 수 있다.

1269년 중국 송나라 승려 지반이 저술한 중국불교사 '불조통기(佛祖統紀)' 윤장조(輪藏條)에 '양나라 부대사가 세상 사람들이 경전을 읽을 겨를이 없거나 혹은 문자를 알지 못하기에 쌍림도량(雙林道場)에 경권(經卷)을 봉안하였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경전을 읽을 시간이 없고, 글자를 몰라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전륜장을 만들어 불경을 봉안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높이 7.4m 거대한 목조 미륵불엔
중생 구제한다는 대승적 자비사상
광배조각·흘러내리는 몸체 눈부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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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흥사 전륜장의 장신(藏身) 부분. 경북 예천의 용문사 윤장대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7m가 넘는 통나무 미륵불상

융흥사 내 자씨각(慈氏閣)에 봉안돼 있는 거대한 목조 미륵불상도 눈길을 끌었다. 중국 산시(陜西)성에 있는 오대산(五臺山)의 통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자씨각이라는 전각 명칭은 잘 쓰지 않는 이름이다. 자씨라는 일반 성씨가 있는 것은 아니다. 미륵불(미륵보살)을 모시는 전각이다. 미륵보살은 자비와 사랑을 뜻하는 '자(慈)'를 성씨로 사용해 '자씨보살'이라 부르기도 한다.

북송시대에 만들어진 이 불상의 높이는 7.4m나 된다. 서 있는 모습의 불상이다. 전신을 아우르는 광배 조각도 멋지고,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몸체도 아름답다.

이 불상 제작에 사용한 나무와 관련해서는 이런 전설이 있다. 홍수가 나자 강물을 따라 오대산에서 떠내려온 나무가 사찰이 있는 정정에 이르렀다. 500리를 떠내려온 이 통나무를 신이 보낸 선물로 믿었다. 그래서 온 정성을 다하고 심혈을 기울여 수려한 미륵보살로 탄생시켰다. 여성이 바라보면 속마음을 털어놓게 되고 남성은 묘령의 아가씨 자태를 떠올린다는 이 지방 사람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미래불인 미륵불을 모시는 법당을 미륵전이라고 한다. 미륵불에 의해 정화되고 펼쳐지는 새로운 불국토 용화세계를 상징한다고 하여 용화전(龍華殿)이라고도 하고, 자씨전(慈氏殿)·대자보전(大慈寶殿)이라도 한다. 한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미륵전 건물은 김제 금산사의 미륵전이다.

미륵신앙의 중심은 미륵(Maitreya)이다. 원래 '친구'를 뜻하는 미트라(mitra)로부터 파생된 마이트레야(Maitreya)는 자비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어 한자문화권에서는 미륵보살을 자씨보살(慈氏菩薩)이라고도 불러왔다. 관세음보살을 대비보살(大悲菩薩)이라 부르는 것과 대조가 된다. 미륵불은 석가모니불이 구제할 수 없었던 중생들을 남김없이 구제한다는 대승적 자비사상을 근거로 출현했다.

융흥사 사찰 내에는 청나라 강희·건륭 황제의 친필 비석을 비롯해 옛 비석도 많다. 수(隋)·당唐)·송(宋)·금(金)·원(元)·명(明)·청(淸) 시대의 비각(碑刻) 30여 점이 보존되어 있다. 이 중 용장사비(龍藏寺碑)는 사찰 창건 당시에 세워진 비석이다. 융흥사 창건기가 새겨진 이 비석은 전쟁 때마다 이곳을 다스렸던 왕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 비석만은 사수하라"고 명한 덕분에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는 특별한 유물이라고 한다.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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