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우문우답] 정권교체냐 정치교체냐

  • 전 청와대 정책실장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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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01   |  발행일 2022-03-01 제22면   |  수정 2022-03-01 07:20
20대 대선 판세·결과 예측불허
윤석열, 정권교체의 명분 강조
이재명, 정치교체의 화두 제시
3월9일 누가 대통령 당선되든
정치개혁의 염원 외면 어려워
국민과 민의 존중 정치 펼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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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청와대 정책실장 경북대 명예교수

20대 대선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선거 판세는 엎치락뒤치락 요동치는데,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 오리무중이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후보가 이재명 후보를 앞서고 있으나 1·2위 격차가 오차 범위 이내이고, 또 격차가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를 보여서 최종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다. 그래서 3월9일 저녁 방송사에서 발표할 출구조사 결과를 온 국민이 손에 땀을 쥐고 기다릴 것 같다.

정치 초년생 윤석열 후보가 이렇게 높은 지지를 받는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정권교체라는 명분이 워낙 강력해서다. 국민이 문재인 정부에 실망, 분노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부동산 폭등, 인사 실패 그리고 조국 사태다. 이 세 가지 실패는 현 정권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를 희망하는 국민이 50% 정도, 정권 유지를 바라는 국민이 40% 정도 나오는 것도 별로 이상하지 않다. 이것만 놓고 보면 선거는 하나 마나 윤석열 후보의 승리가 예상되는데, 한국의 선거라는 게 그리 간단한 게 아니어서 여러 변수의 작용 여하에 따라 어떤 결과가 나올지 실로 예측하기가 어렵다.

중요한 변수 하나는 안철수 후보의 행마다. 안철수 후보는 지금까지 정권교체를 강조하면서 윤석열 후보와 궤를 같이 해왔으나 최근 들어 묘한 기류의 변화가 감지된다. 안 후보는 윤 후보에게 후보 단일화를 제의했으나 묵살 당하고는 단일화 포기를 선언했다. 그 뒤로는 부쩍 윤 후보 공격 수위를 높인다. 최근에는 '정권교체 한다고 능사는 아니다, 제대로 된 후보가 정권교체를 해야지 능력이 안 되는 후보가 정권교체를 해봤자 뭐 하느냐' 이런 주장을 편다. 이는 누가 봐도 윤 후보에 대한 공격이다.

이러는 사이 민주당에서는 정치교체 또는 정치개혁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내걸고 있다. 그래서 급기야 2월27일 밤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다당제 실현을 위한 정치개혁을 만장일치로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그 내용은 4년 중임 대통령제, 대통령 선거에 결선 투표제 도입, 국회에서 추천하는 책임총리,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군소정당의 국회 진출 도모, 지방선거에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이다. 이것 하나하나는 엄청난 파급력을 갖는 메가톤급 폭탄이다. 5년 단임 대통령제가 갖는 문제에 대해서는 1987년 이후 갖가지 비판이 많았고, 그 대안으로 제시되어 온 것이 4년 중임 대통령제 혹은 내각책임제였다. 대통령 선거에 결선투표가 도입되면 지금까지 선거 때마다 문제가 됐던 후보 단일화가 아예 불필요해지고, 보다 민의에 부합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이다. 중대선거구는 거대 양당의 독점 체제를 타파하고 군소정당의 진출을 돕는 좋은 방향이니 우선 지방선거에 적용하고 나중에는 국회의원 선거에도 적용할만하다. 몇 년 전 국회 정치개혁특위(위원장 심상정)에서 오랜 논의 끝에 연동형 비례대표를 늘리기로 결정해서 드디어 정치개혁이 이루어지나보다 하고 기대가 컸으나 결국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이라는 희대의 꼼수를 써서 정치개혁을 형해화시켰던 악몽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러니 국민이 정치를 불신하고 국회의원을 백안시하는 것이다.

최근 후보 간 TV 토론에서 위성정당 문제가 화제로 올랐을 때 윤석열 후보는 민주당과 다른 정당들이 국민의힘의 의사를 무시하고 밀어붙이는 바람에 그리 되었다고 변명했으나 이는 말이 안 된다. 민의를 보다 잘 반영하는 다당제를 향한 선거제도 개혁은 누구도 거부할 명분이 없는 명백한 진보이므로 만사 제쳐놓고 동조함이 마땅하다. 애당초 이를 반대한 것부터 잘못인데다가, 그 뒤 위성정당을 만들어 개혁을 파괴하는 기발한 꼼수를 창조하기까지 했으니 수구기득권 정당이라고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먼저 위성정당을 만드니 하는 수 없이 방어적 차원에서 따라갔노라고 변명했지만 퇴행적 꼼수에 가담했으니 민주당 역시 지탄받아 마땅하다. 남이 잘못하면 꾸짖고 다른 길을 가야지, 눈앞의 의석수에 집착하여 국민의힘을 따라간 민주당 역시 변명의 여지가 없고, 욕을 먹어 마땅하다. 이러니 양대 정당이 욕을 먹는 것이다.

그 바람에 군소정당들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었다. 정의당의 심상정 의원은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을 맡아 평생 소원이었던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이라는 큰일을 해놓고도 위성정당이라는 꼼수로 뒤통수를 맞았으니 충격과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 민주당의 정치개혁 결의에 대해 만감이 교차할 텐데 그래도 대의를 향한 길에는 동행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본다. 안철수 후보는 줄곧 외쳐온 '새 정치'의 핵심이 다당제 실현이므로 정치교체, 정치개혁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김동연 후보도 지금까지 언행으로 보아 이런 대의에 어깨를 나란히 할 공산이 크다고 본다. 국민의힘은 어떨까? 글쎄요. 지금까지 이런 개혁을 온몸을 던져 반대해왔으니 지금 갑자기 입장 바꾸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개혁, 정치교체의 명분이 워낙 강력하므로 국민의힘은 심각한 고민에 빠질 것이다.

지금 민주당은 과거를 반성, 사과하고 올바른 길을 가겠다고 하니 속는 셈 치고 한번 지켜볼 수밖에 없다. 정치인보다 국민을 앞세우는 정치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어쨌든 이번 대선은 막바지에 이르러 자못 흥미로운 양상을 띤다. 정권교체냐 정치교체냐, 그것이 문제로다. 정권교체도 명분이 있지만 정치교체는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열흘 뒤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정치교체, 정치개혁이라는 국민적 염원, 국가적 과제를 외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20대 대선은 지금까지 진흙탕 선거라고 욕을 많이 먹었지만 그래도 잘하면 먼 훗날 우리나라 정치의 지각변동을 일으킨 선거라는 평가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진정 그런 평가를 받게 되기를 바란다.
전 청와대 정책실장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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