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욱 큐레이터와 함께 '考古 go! go!' ] 신라와 가야 고분 발굴의 성과 ⑥ 순장의 인식과 순장 습속의 이해

  • 김대욱 영남대박물관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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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11   |  발행일 2022-03-11 제21면   |  수정 2022-03-11 09:14
앳된 얼굴의 순장자…주인에 대한 충성인가 희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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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지산동73호분 순장 모습(복원). <출처 대가야박물관 2015>

필자는 지난 몇 차례에 걸쳐 신라·가야 고분의 고고학적 연구 성과를 지역별 토기 양식 설정과 신라·가야의 영역, 고분의 구조와 변천, 고분의 축조 연대, 신라 사회의 형성과 발전 과정, 가야에 대한 실체 인식과 가야 사회의 변화 등으로 구분하여 설명했다. 오늘은 신라·가야 사회의 순장에 대한 인식과 순장 습속의 이해라는 주제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순장자의 신분 비교적 높은 편
권력자의 호위무사·첩 등 확인
희생에 대한 사회·묵시적 합의
죽어서도 봉사의 책임 다한 것

권력자 위계에 따라 법칙 존재
순장인원 수·신분 등 규제 추정
5세기말 축조한 지산동44호분
30명 이상의 순장자 발굴되기도



기원후 4~5세기 때에 신라와 가야의 고분에서 순장이 행해졌음은 주지하고 있을 것이다. 순장은 왕이나 큰 권력을 가진 자가 죽었을 때 평소 그를 모시던 시종이나 하인을 죽여 무덤에 함께 묻는 습속을 말한다. 따라서 순장은 많은 부장품과 함께 타계의 생활이 현세와 연결된다는 사상에서 시행된 것으로 살았을 때의 권위를 죽어서도 가져간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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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조영동고분군 부곽 순장 사례.


이러한 순장의 습속은 내세적 이데올로기와 차별적 신분제도가 두드러진 사회에서 '사람의 희생'에 대한 사회적 합의 또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을 경우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즉 주피장자(무덤의 주인공)가 소유하고 있거나 봉사의 책임이 있는 종속 관계자를 함께 매장하는 장제이다. 중국이나 고대 이집트 등 세계 여러 지역에서 약 5천년 전부터 시작되어 복합사회 또는 고대국가 형성 이후 점차 사라지게 된다.

1970~80년대 신라·가야의 고분 발굴이 본격화되면서 순장에 관한 인식만 있던 상태에서 그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순장의 구체적인 증거가 나오고 영남지방 고분에 순장이 시행되었음을 처음 알린 것은 1977년 고령 지산동44·45호의 발굴이었다. 이후 지속된 고령지역의 대형분과 부산 복천동고분군,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고분군, 김해 대성동고분군과 창녕 교동고분군, 함안 도항리·말산리고분군 등에서 순장의 흔적이 명확하게 나오게 되었다.

가야의 순장은 3세기 중엽 김해 대성동고분군에서 최초로 확인되었는데 도질토기의 발생과 그 시기가 비슷하다. 이후 4세기 전엽 대성동13호분에서는 3인, 4세기 후엽 대성동1호분에서는 5인의 순장이 확인되었다. 5세기 전엽 고령 지산동75호분에서는 10인 전후, 30호분에서는 5인 전후가 확인되었다. 그러다가 5세기 말 지산동44호분에서는 30인 이상의 순장자를 매장하며 순장이 극대화된다. 지산동44호분 주석실과 부장실 2기, 순장 석곽 32기에서 적어도 35인 정도가 순장되었는데, 이는 삼국시대 확인된 순장 중에서 가장 많은 수에 해당한다. 5세기말에서 6세기 초에 조성된 45호분에서는 13인 이상이 순장되었다.

이들 순장자의 신분은 비교적 높은 계층도 확인되었고 왕의 호위 무장(武將)이나 왕의 근시(近侍) 등 순장자의 성격도 추정되었다. 이 발굴은 대가야 순장의 이해 및 대가야 묘제 및 역사 연구를 본격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다양한 가야 고분 순장 습속은 최고 권력자의 위계에 따라 순장자의 수와 신분이 규제되었던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신라의 경우는 4세기 초에 축조된 경산 조영1A-19호 목곽묘에서 가장 이른 순장이 확인되며 경주 정래동2곽·3곽, 경산 조영1B-60호의 사례를 볼 때 신라식 목곽묘의 출현 시기에 순장이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경주 황남대총의 경우 남분과 북분에서 각각 10인 정도가 순장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경주를 비롯해 부산, 양산, 창녕, 경산, 대구, 성주, 의성, 영덕지역 등 신라권 전체에서 순장이 확인된다. 이를 통해 볼 때, 순장 습속은 신라 고총의 보편적인 장법으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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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장자의 얼굴복원(경산 조영동 EⅢ-8호 순장자, 15세 전후).

발굴을 통한 순장 자료가 증가함에 따라 권역별 또는 지역별 순장자의 배치 형태나 그 규모 등을 밝히는 연구가 여러 차례 진행되었다. 또한 순장자의 신분이나 성격 등에 관한 연구도 활발해졌는데 고분에서 확인된 고인골을 통한 연구에 기반하기도 한다. 즉 순장의 대상이 노비나 전쟁의 포로라기보다 최고 권력자의 근친자로 시동이나 시녀, 첩이나 유모 등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호위무사나 재산관리자, 식모나 단야(鍛冶) 장인과 같은 특수한 일에 종사한 사람들일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그런가 하면 이들이 귀중한 금속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음을 통해 사회적 계층이 그리 낮지 않았음과 이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례가 베풀어졌음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순장 인골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지면서 성별이나 연령 분석뿐만 아니라 성장과 발육 상태, 식생활과 영양 상태, 출산이나 질병 등을 확인하기도 하였으며 DNA 분석을 통한 순장자 간의 가족 관계도 복원하고 있다. 심지어 법의인류학, 해부학, 미술학 등의 전문가들이 함께 고대 순장자들의 법의학적 얼굴복원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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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박물관 학예연구원

기원후 6세기 전반 신라·가야가 고대사회로 발전하면서 순장은 결국 사라지게 된다. 이 시기의 '삼국사기' 순장 금지 기록이나 법흥왕대 불교의 공인, 율령의 반포, 지방관 파견 등의 제도 개혁도 순장 습속의 소멸을 뒷받침한다. 신라·가야 사회에서 짧게 성행하다가 사라진 순장 습속은 당시 최고 지배자들이 가진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다양한 정치·경제·사회·사상적 도구들을 통해 어떤 양상으로 확대, 재생산되는지를 보여주고 당시 사회는 이러한 제도 또는 규범을 어떻게 인정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21세기 우리 사회에서도 이와 유사하거나 또 다른 형태의 순장이 이루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유심히 살펴볼 일이다.

영남대박물관 학예연구원


순장= 왕이나 큰 권력을 가진 자가 죽었을 때 평소 그를 모시던 시종이나 하인을 죽여 무덤에 함께 묻는 습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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