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돌보는 마음, 가사·육아·간병…돌보는 사람을 돌보지 않는 세상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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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18   |  발행일 2022-03-18 제14면   |  수정 2022-03-18 12:30
헌신을 요구받는 '집 안 여자'의 굴레
손주·치매 부모까지 책임진 노년 등
'돌봄 노동'을 혼자서 감내해야 하는
여성들의 시선으로 사회 모순 파헤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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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담 작가의 소설집 '돌보는 마음'은 돌봄 노동을 홀로 감내하는 각계각층의 여성에 주목한다. 돌봄 노동의 부조리함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노인 돌봄'의 현장도 작가 특유의 시선과 감성으로 흥미롭게 풀어낸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경제 위기는 '돌봄 노동'의 책임과 의무를 더욱 크고 무겁게 만들었다. 한 번 시작된 돌봄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의무와 노동으로 이어진다. 한 문학평론가는 이를 '돌봄 회로'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김유담 작가의 소설집 '돌보는 마음'은 돌봄 노동을 홀로 감내하는 각계각층의 여성에 주목한다. 1~3부로 구성된 소설집에는 모두 10편의 단편이 담겼다. 작품의 배경은 집, 병원, 직장 등 우리 사회의 '돌봄 현장' 곳곳이다. 청소년과 노년, 전업주부와 감정 노동 종사자 등 다양한 인물의 시선으로 돌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캐릭터마다 표정과 말투, 은근한 뉘앙스가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이를 통해 실생활의 면면과 광범위한 사회적 분위기를 세밀하게 보여 준다. 애정과 절망을 오가는 돌봄 노동자들의 감정선도 행간마다 고스란히 나타나고, 돌봄을 둘러싼 관계의 역학도 생생하게 드러난다. 세대, 지역, 계층의 현실과 불안을 들여다보면서 사회 구조적인 모순까지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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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는 마음 김유담 지음민음사/304쪽/1만3천원

특히 한 인물의 시점으로 타인의 입장과 마음을 동시에 바라보고, 그 사이에서 형성되는 미묘한 권력 관계를 능수능란하게 드러내는 김유담 특유의 글쓰기가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

1부는 '집 안 여자'를 둘러싼 돌봄 노동의 기울어진 역학관계를 바라본다. 단편 '안(安)'은 가정에 대한 헌신을 여성의 도리라고 강조하는 큰엄마와 여자일수록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다그치는 엄마 사이에서 자란 '나'의 이야기다. 특히 시어머니와 남편은 '정형화된 집 안 여자'의 역할에 '나'를 끼워 맞추려 한다. 그때마다 '나'는 두 엄마의 삶을 돌아보고, 직접 조언도 구해 보지만 시원한 해답을 찾을 수 없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가족을 돌보는 동안 나를 돌볼 수 없고, 나를 돌보려 하면 이기적이라는 비난이 돌아오는 비합리적인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나'는 큰엄마의 장례식장에서 이혼을 결심한다. 두 엄마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그들이 '가 보지 않은 길'을 선택한 '나'를 통해, 개인의 희생만으로 점철된 돌봄 노동의 부조리한 단면을 선명히 들여다볼 수 있다.

2부는 예전과는 달라진 이 시대의 '엄마다움'에 주목한다. 작가는 '엄마'가 시작되는 공간으로 '산후조리원'을 주목한다. 단편 '조리원 천국'에서 산후조리원은 아이를 돌보고 키우는 기술을 습득하는 곳으로 정의된다. 이곳의 계급은 사회적 성취와 무관하게 '아이를 잘 먹이고 키우는' 순으로 새롭게 정립된다. 주인공은 전형적인 '엄마'의 역할이 스스로에게 점점 덧입혀지는 것을 공포로 느낀다.

3부는 돌봄 노동의 부조리함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노인 돌봄'의 현장으로 향한다. 단편 '특별재난지역'의 '일남'은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서도 남편과 손녀, 치매에 걸린 아버지까지 돌보는 노년 여성이다. 손녀를 가르치고 키우는 일은 예전 같지 않고, 아버지를 돌보는 일도 팬데믹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일남'은 있는 힘껏 가족을 돌보지만,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과 앞으로도 영원히 알 수 없으리라는 불안에 사로잡힌다.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유담은 첫 소설집 '탬버린'으로 신동엽문학상을, 이듬해 '안(安)'으로 김유정작가상을 수상했다. '당대의 실제적인 삶'을 직시하고 '동시대의 내밀한 부정(不淨)'을 선명하게 드러내며, 개인의 삶과 지금 이 시대를 가장 넓고 세밀하게 그리는 젊은 작가로 자리 잡고 있다. 작가 역시 이번 소설집에서 '돌보는 사람, 그리고 쓰는 사람. 아이가 태어난 후로 내게 그 두 가지 외 다른 정체성은 허락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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