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형의 정변잡설] 정기행위와 무속행위

  • 정재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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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04   |  발행일 2022-05-04 제26면   |  수정 2022-05-04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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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 (변호사)

피로연 뷔페는 결혼식이 열릴 때 제공되어야 손님을 대접함에 지장이 없고 웨딩드레스는 결혼식 전에 납품되어야 쓸모를 다하는 것이다. 이처럼 성질상 특정한 시기에 이행되지 않으면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종류의 계약을 민법은 '정기행위(定期行爲)'라고 하고, 제때에 이행되지 않으면 즉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특별히 취급한다. 이렇게 딱딱한 법 규정으로 예를 드는 것은 실질만큼 그 시기가 중요한 것들이 세상만사 중에 많이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4대강 사업이 그랬다.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큰 강 네 개를 운하로 만들겠다는 계획도 시기가 문제였다. 치수 정책이 중요하고 그 길밖에 없다면 그중 작은 강 하나를 시범적으로 개발하여 그 성과로써 국민을 설득했어야 했다. 모든 강을 동시에 파고 물길을 막는 콘크리트 보를 임기 중에 다 만든 권력은 일단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말로가 어떠했는지는 말 안 해도 다 아실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요즘 여당이 검찰의 수사권을 축소하기 위한 입법을 서두르는 것도 하필이면 정권을 넘겨주기 직전이라는 시기 때문에 국민의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당선인이 국민들께 돌려드리겠다는 명분으로 청와대를 거부하고 경호 문제와 극심한 교통 체증에도 개의치 않고 출퇴근하겠다, 국방부 청사를 비워라, 외교부 장관 공관을 쓰겠다는 등의 횡보를 거듭하고 있는 것도 '시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당최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일단 입주한 후에 천천히 대안을 찾으면 될 터인데, 단 하룻밤도 거기서 잘 수 없다는 태도는 청와대를 돌려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엉뚱한 단호함일 뿐이다. 앞뒤가 맞지 않으면 뭔가 기술이 들어간 것이고 들어간 것과 나간 것이 같지 않으면 중간에 뭔가 있다는 것이 질량보존의 법칙이다. 보편적인 법칙과 상식에 맞지 않는 신묘함을 이적(異蹟)이라고 하고 이것은 일상이 아닌 신앙의 영역에 속한다. 당선인의 그 단호함이 '시기'로 설명되지 않으니 풍수를 믿는다, 무속이 개입했다는 등의 '카더라' 방송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제주도에는 정월 열흘 동안 귀신들이 자리를 비우고 그때 이사를 하면 해코지를 당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 도민들이 동시에 이사를 하는 풍속이 있다고 한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동티를 피할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있으니 그에 따르는 것도 좋겠다. 그런데 공적인 영역 특히 국가의 행위가 무속을 좇아 생기는 안이함에 기대려 한다면 그건 매우 권태롭다. 권태는 성공한 자에게 주는 신의 징벌일 뿐 새 정부를 기대하는 민초의 몫은 아니기 때문이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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