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으로 맺은 세가문의 700여년 이어온 인연

  • 윤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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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10 21:50  |  수정 2022-05-11 10:25  |  발행일 2022-05-10
고려말 옥산전씨, 아산장씨, 밀양박씨

장인과 사위의 관계 현재까지 이어와

매년 음력 4월 10일 세가문 '강선계' 개최

"인간관계 파편화된 현대사회에 큰 시사"
혼인으로 맺은 세가문의 700여년 이어온 인연
10일 경남 밀양시 남전리 옥산전씨 추파정에서 열린 강선계. (강선계 제공)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강산이 70번 넘게 바뀌어도 한번 맺은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이어온 세 가문이 있다.

대구와 경산 일대에 대대로 살아온 옥산전씨(玉山全氏), 아산장씨(牙山蔣氏), 밀양박씨(密陽朴氏)가 10일 경남 밀양시 남전리에서 강선계(講先契)를 열었다. 강선계는 혼인으로 맺은 인척 관계의 세 가문이 오랜 세월 동안 이어 온 우의를 기리는 친족계다.

이들 세 가문의 인연은 700여년 전 고려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산에 기반을 두었던 옥산전씨 가문의 고려 말 판밀직사를 지낸 전의룡은 슬하에 2남 3녀를 뒀다. 이 중 딸 셋은 혼사를 통해 아산장씨, 밀양박씨, 은진송씨(恩津宋氏)를 사위로 맞이했다. 첫 딸은 동래부사를 지낸 장흥부와 둘째 딸은 대사헌을 지낸 박해와 혼인했다. 세 사위는 당시 관행대로 처가 인근에 거주하면서 돈독한 정을 쌓았다. 장인 전의룡이 세상을 떠나도 사위들은 처가의 제의에 참여하는 등 친족으로서의 관계를 유지했다. 이들 세 사위를 기리는 관행은 대대로 이어져오다 은진송씨의 대가 끊긴 이후에는 장인 가문인 옥산전씨가 합류하여 현재까지 인연을 간직해오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3년에 강선계를 결성한 세 가문은 매년 음력 4월 10일 계를 갖는다. 올해가 98주년이다.

이들 세 가문은 조선시대에 많은 인재 배출했다. 옥산전씨는 조선건국공신인 전백영과 대구지역 최초의 서원인 연경서원의 건립에 기여하고 성리학의 학풍을 진작시킨 전경창, 아산장씨는 청송부사를 지낸 장문도와 임진왜란 때 밀양 일대에서 왜적을 물리친 의병장 장문익, 밀양박씨는 단성현감과 연기현감을 지낸 박울과 박순조, 돈녕부도정을 지낸 박사신,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박성(朴惺) 등 걸출한 인재를 키웠다.

강선계는 가문마다 번갈아가며 2년간 회장을 맡고 매년 계회를 연다. 지난 2년은 코로나19로 중단됐다. 이날 옥산전씨 추파정(秋坡亭)에서 개최된 올해 계회에는 100여 명의 각 문중 성원이 참석했다.

전영수 강선계 회장은 "오랜 세월 이어 온 세 가문의 우의를 잘 받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줘야한다"며 "2024년 강선계 100주년 행사는 성대하게 치를 것이다"고 밝혔다.

이날 계회에 참석한 영남대 이창언 인문교육학술원장은 "양변적 친족관행이 일반적이었던 조선전기까지의 친족관념을 반영한 강선계는 부계친족 관행이 일반화된 조선후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혼인으로 맺은 인연을 오랫동안 이어간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강선계의 전승은 서구식 생활양식의 보편화로 인간관계가 파편화되고 소외가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의미를 해석했다.


윤제호기자 yoonj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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