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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까지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는 인사수요 발생→청와대 인사수석실의 인재 추천→민정수석실의 인사 검증→비서실장 주재 인사추천위원회 협의→대통령 재가 절차를 거쳤다. 인사에 개입하려는 권력 실세들의 입김도 이 과정 안에서 작동했다. 이 흐름도의 결정적 취약성은 인사 추천부터 검증, 협의체 논의 과정이 모조리 구중궁궐 청와대 안에서만 이뤄진다는 점이었다. 대통령 참모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한 셈이다. 청와대 모든 부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권 실세가 한 사람을 주요 자리에 앉히기 위해 인사수석실에 밀어 넣어서 추천됐다고 치자. 그 실세는 그걸 검증하는 민정수석실에는 압력을 넣지 않을까. 또 인사협의체 참석 멤버인 다른 수석비서관들에게도 "내 사람"이라고 귀띔하지 않을까. 결국 청와대 안의 검증 장치는 오히려 안전장치가 돼 버린다. 같은 공간에서 추천과 검증이 이뤄지다 보니 실세가 개입하지 않은 인사라도 다른 부작용이 간혹 있었다. 인사수석실과 민정수석실의 '담합' 혹은 정반대의 '견제'로 인해 내부 역할분담이 악용되는 사례다.
청와대 인사 시스템의 오작동이 되풀이되면서 역대 정권마다 비선인사, 정실인사가 판을 쳤고 '인사 참사'는 대통령 임기 초반의 단골 이슈였다. 실세가 아무리 자기 사람을 밀어 넣어도 청와대 밖의 독립된 기관에서 검증한다면 외풍을 최소화하고 객관적 판단으로 부적격자를 걸러낼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과거 대통령들은 알면서도 안 했다. 왜? 자기편을 요직에 앉혀야 하니까. 정말 제대로 인사를 하려면 인재추천과 인사 검증 기능 사이에 튼튼한 칸막이를 쳐서 간섭을 차단해야 한다. '검증의 외주화'이기도 한데, 모델은 미국 대통령의 인사방식이다.
미국은 백악관 법률고문실에서 공직 후보자 검증을 개시한 후 FBI(연방수사국)가 기본적 도덕성 검증을 해 부적격자를 미리 걸러낸다. 이 과정에서 '국가안보 직위용 질문지'(SF-86)를 후보자에게 보낸 후 그 답변서를 중심으로 장기간 체계적인 검증을 한다. FBI의 검증보고서는 다시 법률고문실로 넘어가서 종합판단을 받는다. FBI는 법무부 산하에 있다. 윤석열 정부가 법무부에 인사정보관리단을 신설하기로 한 건 '미국 모델'을 채택하기 위해서다. 새 정부는 민정수석실을 폐지했지만, 청와대 시절 민정수석실 산하에서 인사 검증을 맡던 공직기강비서관실은 비서실장 직할로 옮겨 직제를 유지했다. 앞으로 백악관 법률고문실과 같은 역할을 맡는다.
야당과 일부 언론은 윤석열 대통령의 이런 조치를 강하게 비판한다. 법무부의 힘이 너무 강해진다는 건데, 장관이 윤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자 야당이 가장 두려워하는 한동훈이어서 더욱 긴장하고 견제한다. 하지만 FBI의 인사 검증 내용을 미국 법무부 장관이 일일이 보고받지 않듯이 한 장관도 결과만 받아보겠다고 했으니 믿어야 한다. 인사 정보가 사정 업무에 이용되지 않도록 부서 사이 정보 교류를 제한하고 검증조직의 독립성 유지를 위해 사무실도 따로 두기로 했다. 무엇보다 한 장관이 얼마 동안 법무부를 이끌지도 미지수다. 따라서 인사정보관리단 출범에 따른 한 장관 권한 확대 우려는 기우다. 대통령 인사권 행사의 선진화를 위해 진작 도입했어야 할 시스템인데, 과거 대통령이 자기 사람 쓰려고 일부러 안 했던 일이었다.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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