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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식 체육부장 |
쌍둥이 자매는 당대 최고 기량을 자랑하는 스타 선수였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스카우트 1순위였고, 주위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성장하면서 미모까지 갖춰 가히 연예인급 프로 선수로 거듭나 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그들의 영광은 하루아침에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인성(人性)'이 문제였다. 그들은 학창 시절 한 팀을 이룬 동료나 후배 선수들을 상습적으로 괴롭혔다. '학교 폭력' 가해자였다.
초·중·고교 운동부에서 실력이 탁월한 선수는 동료와 선후배 사이에선 물론, 지도자와 학부모들로부터도 추앙의 대상이 된다. 그 에이스 선수는 자존감이 충만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자존감이 지나쳐 자만심으로 변질되면 곤란하다. 쌍둥이 자매는 어린 선수 시절 지나친 자존감을 제어하지 못한 측면이 크다. 어려서 사리 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어른들이라도 가르치고 바로잡아 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선수로서 최정상을 누리다 한순간에 몰락했다.
그래서 손흥민의 가치가 더욱 빛나는지 모른다. 나는 아직도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씨가 아들을 축구선수로 키우면서 누누이 가르친 말을 잊을 수 없다. "네 발 앞에 골 찬스는 팀 동료들의 헌신적 노력이 만든 하늘이 주신 기회다." 동료와 선후배 선수들과 잘 지내라는 말을 수천, 수만 번 외치는 것보다 더 귀에 뚜렷이 새겨질 소리다.
손흥민의 가장 큰 장점은 실력이 아니다. '겸손과 양보의 미덕'이라고 나는 본다. 손흥민의 겸양은 이번 시즌 EPL(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37라운드 번리전에서도 고스란히 엿볼 수 있었다. 전반 추가 시간 손흥민의 코너킥 발끝에서 출발해 토트넘이 페널티킥 찬스를 맞았다. 당연히 키커로 손흥민이 나설 수 있었다. 당시 손흥민은 EPL 득점 랭킹 2위를 달리고 있던 터. 1위 무함마드 살라흐(리버풀)와는 단 한 골 차이였다.
하지만 페널티킥을 찬 건 그의 '단짝' 해리 케인이었다. 케인의 페널티킥 성공률이 높아 감독이 내린 결정이었다. 손흥민은 단 한치의 서운함이나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오히려 케인이 킥을 성공하자 득달같이 달려가 함께 환호하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손흥민은 "득점왕보다 팀의 승리가 우선"이라고 했다.
손흥민이 이번에 아시아인 최초 EPL 득점왕이라는 금자탑을 세운 건 실력도 실력이지만 좋은 인성에 기인한다. EPL 최종전 때 오죽하면 동료 에릭 다이어가 상대 골키퍼에게 "살라흐가 너한테 뭐 해줬어? 살라흐가 너한테 뭐 해줬냐고!"라며 사납게 외쳤을까. '손흥민 득점왕 만들기'에 나선 케인, 루카스 모라, 데얀 쿨루세브스키가 손흥민에게 패스를 몰아줬지만 골키퍼에게 계속 막히자 안타까운 마음에서 나온 화풀이란다. 평소 손흥민이 동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는 장면이다.
결국 손흥민은 최종전에서 2골을 넣어 EPL 공동 득점왕에 올랐고, 라카룸에서 팀 동료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동료들은 환호와 함께 물을 뿌려 순식간에 축하 파티가 열렸다고 한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손흥민과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게 뿌듯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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