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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본부장 |
"윤석열 정부하고 협력 관계가 아주 좋다. 대통령이 홍준표를 무시할 수 없을 거다. 과거 대구시장의 입지하고는 다른 대구시장이 되도록 하겠다." 6·1 대구시장 선거에서 승리한 홍준표 당선인의 첫 일성이다. 일단은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빙의 승부를 펼친 자신을 윤석열 대통령이 충분히 예우할 테니 정부의 국고 지원 등을 받아 지역 현안을 잘 해결할 수 있다는 좋은 의미로 해석된다. 역대 대구시장들보다 정치적 영향력이 훨씬 크다는 자부심도 느껴진다. 실제로 그렇다. 5선 국회의원, 당 대표, 재선 경남도지사를 거쳐 2017년 자유한국당 후보로 대선 출마까지 한 '정치 거물'이다. 이번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때는 일반 국민여론조사(민심)에서 윤 대통령에게 10%포인트 앞서기도 했다. 그런 거물이 대선 후 우여곡절 끝에 대구시장이 됐으니 현직 대통령이 무시하지 못할 만도 하다. 또 대통령과 맞짱 떴던 대구시장이 예산 지원을 요청하면 재정 관료들이 순순히 들어줄 수 있을 것도 같다. 더구나 현 정부 실세 중엔 홍 당선인과 정치권에서 이런저런 인연을 맺은 사람도 적지 않다. '대구시장 홍준표'가 마음먹기에 따라선 대통령을 필두로 하는 중앙 정·관계 인맥으로 지역발전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다만 홍 당선인이 정치적 포부는 잠시 미루고 시정에 전념할 때 그렇다.
'대통령이 홍준표를 무시할 수 없을 거다. 과거 대구시장의 입지와 다르다'라고 한 말은 다른 의미의 정치적 해석도 가능하다. 자신이 비록 경선에서 패하고 대구로 왔지만 전체 국정운영이나 정국 상황에 대해 필요한 목소리를 내겠다는 말로도 들린다. 홍 당선인은 '홍 반장'이란 정치권의 별명처럼 필요한 현안을 챙기는 스타일이다.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한 뒤에도 '청년의 꿈'이란 인터넷 플랫폼을 만들어 윤석열 후보와 각을 세웠다. 이제 대구시장이 됐으니 중앙정가엔 눈길을 주지 않고 시정(市政)에만 전념할까. 당분간은 꼭 그래야만 한다. 홍 당선인은 지방선거 다음 날(2일)부터 SNS를 통해 여권에 일침을 가했다. 경기도지사 선거에 무소속 출마한 강용석을 겨냥해 "강성보수의 관종정치 분탕질"이라고 했다.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단일화를 하지 못한 보수후보들도 분탕질을 쳤다고 했고, 영남권 일부 국회의원들의 공천 갑질이 있었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대선후보 경선(2007년)에서 패한 뒤 MB 정부 5년 내내 대립각을 세우며 '여당 속의 야당' 역할을 했다. 세종시 수정안 반대 등의 이슈에 뛰어들며 '미래권력'으로 자리매김했다. 홍 당선인도 박근혜 벤치마킹을 통해 5년 후를 내다보려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앙 정치인이었던 박 전 대통령과 달리 홍 당선인은 240만 시민을 위해 대구 시정을 올바로 이끌 최우선적 책무가 있다. 선출직 대구시장도 정치인의 한 사람인데, 여의도 정가에서 들리는 소리에 모조리 귀를 막고 시정만 하라는 건 아니다. 선거 다음 날 지적한 '지방선거 승리에도 아쉬운 점' 정도는 충분히 피력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도 대통령의 정치 선배로서 좋은 조언을 하는 건 모두를 위해 괜찮은 일이다. 다만 존재감 과시를 위한 비판은 자제해야 할 이유가 있다. 자칫 불똥이 대구시장을 넘어 대구시민 전체에 튈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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