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다시 호계서원을 말한다

  • 김도현 전 영남일보 논설위원·전 문체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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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20   |  발행일 2022-06-20 제24면   |  수정 2022-06-20 07:45

김도현

오늘은 비가 올까. 농업 농사 비중이 컸을 때 같으면, 매일 거북 등같이 갈라진 논바닥 사진이 신문 1면에 나오고, 기우제 소식과 옛날 임금이 빌던 얘기가 실립니다. 우리나라 왕도, 중국 천자도 자기 잘못을 공개 반성하는 책기교서(責己敎書)를 내놨습니다. 두루뭉술한 사과문이 아닌 구체적 반성이어야 합니다.

저를 포함해 모두가 돌이켜 반성해야 할 때입니다. 그중에 유림이 있을 것입니다. 현수막, 피켓, 연판장, 성명, 도열과 구호, 시위, 집회합니다. 옳은 말 많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혁신유림이 되기로 했답니다. 지난 11일 서울 현충원에서 90주기 추도식을 올린 대표적 혁신유림 석주 이상룡 선생은 '나부터(自己)' '나를 새롭게(自新)'를 말씀하고 실천했습니다. 내 집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내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치고 나와 가족 친척이 간난신고에 앞장섰습니다.

호계서원 관련, 이게 옳다 저게 옳다 참으로 어렵습니다. 모르긴 해도 '예송(禮訟)에는 정답이 없다'가 정답 아닐까요? 호계서원 복설은 '목조건축물 문화재'(경북도지정 유형문화재 지정번호제35호)를 다시 짓는 것일까요? 아닐 것입니다. 퇴계 선생이 선인다(善人多)를 목표로 과거 공부만 하는 관학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 서원을 세웠고, 그 뜻을 이어 퇴계와 그 고제를 받들며, 다시 선인을 많이 만들기(多善人) 위해 16세기에 호계서원을 만들었다면, 오늘 21세기에는 왜 호계서원을 다시 세워야 할까요? 오늘 한국 사회는 퇴계가 성학십도에서 말한 '세계를 온통 사유화하고 자신의 욕심에 찬 의도와 인식으로 환원시키는 인물위기지병(認物爲己之病)'이 골수에 스며 경제발전에도 국민 행복지수는 거꾸로 가고 있는 데 대한 교육적 처방일 것입니다. 다시 나와 취직만 아는 공부를 보완할 인격적 나를 위한 공부를 서원에서 찾고, 그것을 통해 세계적 규모의 전방위적 경쟁이 군사 과학기술 경제뿐 아니라 규범경쟁까지 나아가는 현대에 유교가 새로운 빛을 내는 발신기지를 서원에서 찾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서원 공간의 새로운 변신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선현 제향도 관습적 제의에서 나아가 내재적 초월에 동참하는 영적 체험의 시·공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원이 기껏 관광자원 정도에 전락하고, 자생력이 없는 퇴화로 가는 것을 막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1565년 영남유생들이 문정왕후에 기대 국정농단을 했다는 혐의로 통문을 돌려 보우를 처벌하라는 상소를 하자고 나섰습니다. 그때 퇴계는 "온 도내에 통문을 돌려 서로 이끌고 대궐에 나아가는 것은 온편한 일이 아니다. 할 말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 스스로 상소를 올리는 일이 옳다. 통문을 돌려 상소를 올리는 것은 유자가 할 일이 아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안과 안동의 선비들이 선생의 가르침을 듣고 대궐로 나아가지 않았답니다. 요즘 말하는 반지성주의적 행태를 엄히 경계한 것이고, 당대 유림은 이를 깨달았습니다.

'유림'이 주장하는 바, 호계서원 문제는 '위판'인데, 갑론을박으로는 정답이 안 나옵니다. 정답은 원칙에 따라 하고 여기에 모두가 합의 순종하는 것 말고 따로 있을까요? 조선시대 예송은 권력투쟁이었습니다. 호계서원에 권력투쟁이 있나요? 세 싸움이 있나요? 안 하기로, 없기로 한 것 아닌가요? 지난 일은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로 모두 무로 돌리고, 시도당국이 운영 주체를 새로 선임하여 이들에게 전권을 맡기고 모두가 승복하면 간단히 해결될 일입니다. 시대와 민중의 시선과 기대를, 유림을 자처한다면 무겁고 무겁게 느껴야 할 것입니다. 이 기대를 배반한다면 시대가 내리는 서원철폐령을 피할 수 없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당국의 빠른 결단을 바랍니다. 안동 일원에는 이 사태를 전환 시킬 세계적 인재들이 있습니다.

김도현 (전 영남일보 논설위원·전 문체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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