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능소화

  •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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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6-27   |  발행일 2022-06-27 제27면   |  수정 2022-06-27 06:49

2년 전 능소화 4그루를 옹벽을 오르는 철계단 아래에 심었다. 젓가락처럼 가는 능소화(凌소花) 덩굴은 계단을 받치는 사각쇠파이프를 타고 올라가며 자랐다. 2년간 엄지손가락만큼 굵어진 덩굴에 며칠 전 꽃 몇 송이가 처음 피었다. 중국 원산의 능소화는 한자로 풀이하면 하늘을 범하는 꽃이다. 덩굴 마디에서 흡착근이 나와 어디든 잘 붙기 때문에 하늘 높이 올라갈 수 있다는 뜻일 게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 자라도 10m 정도다.

1997년 안동에서 택지 조성 공사를 하던 중 400년 전의 남성 미라와 죽은 남편에게 쓴 '원이 엄마의 편지'가 출토됐다. 편지에는 남편이 살아 있을 때의 사랑과 행복, 죽은 후의 애달픈 마음이 절절하게 담겨 있었다. '함께 누우면 언제나 저는 이렇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이렇게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한여름날 크고 붉은 능소화를 보시거든 저인 줄 알고 달려와 주세요.' 이 사연은 2006년 조두진에 의해 소설 '능소화(사백 년 전에 부친 편지)'로 다시 태어났다. 또 안동시 강남동에는 능소화 거리가 만들어졌다.

지난 15일 영남일보에 경산시 자인면 설총로의 한 주택에 심어진 능소화가 누군가에 의해 베어져 나간 사진이 게재됐다. 베어지기 전 활짝 핀 꽃이 창문을 반쯤 덮으며 고택과 화사하게 어울려 있는 사진과 함께. 그 누군가가 혹 원이 엄마의 편지를 알았더라면 오랜 세월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과 설렘을 선사했을 그 능소화에 테러를 가할 수 있었을까?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나무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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