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백두대간 자생식물 이야기 <11>싸리

  • 공민정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보전복원실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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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7-15 08:36  |  수정 2022-07-15 08:46  |  발행일 2022-07-15 제20면

공민정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면 사람 키 정도 올라오는 싸리나무에 자줏빛 꽃이 달린다. 키가 큰 교목에 비하면 볼품 없을지 몰라도 꽃이 귀한 계절에 만나는 자줏빛 꽃은 마냥 반갑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작은 꽃이 올망졸망 달린 꽃을 보면 카메라를 들이밀지 않을 수 없다.

싸리는 '살다'의 어근인 '살-'에 접미사 '-이'가 붙어 '살이'라는 말에서 파생되어 '싸리'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물의 이름이 '살이'에서 파생되었다니 우리네 삶 속에서 얼마나 많이 사용되었는지 짐작이 간다.

내가 처음 싸리를 알게 된 건 외삼촌 어릴 적 이야기 속 회초리였다. 외삼촌은 웃으며 집 주변이 온통 싸리여서 잡히는 게 모두 외할머니의 회초리였다고 말씀하셨다. 무슨 말일까 했더니 싸리는 옛사람들의 생활용품으로 두루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싸리나무를 엮어 만든 사립문, 마당에 놓인 싸리비, 부엌에 광주리, 지게에 얹는 바소쿠리 등 대부분이 싸리로 만들어진 것들이라고 한다. 불이 잘 붙어 땔감으로 쌓아놓고 쓰였고 초가집 벽도 싸리로 초벽을 만든 후 흙을 발랐다니 우리나라에서 생활필수 '나무'다.

이전부터 흔히 싸리라 말했던 나무는 국내에 분포하는 서로 다른 싸리를 아우르는 것인데 국내에는 싸리를 비롯해 싸리속 내에 20여 종이 포함된다.

그중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흔히 접할 수 있던 나무는 '싸리' '참싸리' '조록싸리'이다. 사는 곳도 쓰임새도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생김새는 다르다. 모두 잎이 세 개씩 달리는 3출엽의 특징을 갖고 있는데, 조록싸리는 잎끝이 뾰족하여 끝이 둥근 싸리나 참싸리와 구분된다. 싸리는 꽃차례가 길어서 잎보다 두드러지고, 참싸리는 꽃차례가 짧아 마치 잎이 꽃을 둘러싼 듯하다. 참싸리의 꽃받침 갈래의 끝이 길고 뾰족하다는 점도 다르다.

싸리는 현대로 오면서 생활방식이 바뀌어 예전처럼 생활용품으로 다양하게 활용되지는 못하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콩과에 속하는 싸리, 참싸리, 조록싸리는 1960년대 초 황폐했던 우리 산야에 사방사업으로 심어져 특유의 질소고정 능력을 발휘하여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거리낌 없이 뿌리를 내려 다시 푸른 산을 만드는 데 크게 공헌했다. 지방도를 운전하다 보면 가끔 절개지에 자리 잡은 이들을 볼 수 있다. 이런 능력을 인정받아 자생식물 복원 소재 94종에 싸리 속 4종(싸리, 참싸리, 조록싸리, 비수리)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훼손되어 척박한 산림에 서둘러 뿌리를 내려 땅을 다지고 다양한 식물들이 다시 돌아오도록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콩과에 족제비싸리(북미)나 중국풀싸리(중국), 큰잎싸리(중국) 같은 외래종이 비탈면 녹화에 많이 사용되면서 싸리의 자리를 넘보는 중이다. 우리 싸리류의 자리가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줘야 할 때이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면 주변에서 싸리를 찾아보아도 좋을 것 같다. 자줏빛 꽃차례를 오밀조밀 달고 있는 싸리가 주변에 가까이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다양한 이유로 군데군데 훼손되거나 척박해진 백두대간이 싸리의 뿌리 끝에서부터 시작해 다시 푸른 빛을 되찾기를 기대해 본다.공민정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보전복원실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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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정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보전복원실 대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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