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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경 (정경부장) |
긴 잠에서 깨어난 대구가 경제영토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제2국가산단 신규 지정 추진은 물론 군부대 후적지, 유휴지를 몽땅 활용할 기세다. 일자리와 돈이 차고 넘칠 그릇을 빚는 일이다. 청년 이탈 등 도시생존 위협요인을 막아낼 '도시 방파제' 기능도 염두에 뒀다.
강력한 리더십이 작용하면 일은 그런대로 진행될지 모르지만 결정적 순간엔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주로 정치적 역학관계에 기인한 것이 많다.
충청권·강원권까지 이미 생활권으로 흡수한 수도권의 경우 틈만 나면 규제 빗장을 활짝 걷어낼 궁리만 한다.
그간 대기업과 고급인력을 모조리 낚아채 간 수도권은 지난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공장 신·증설 확대방안을 관철시켰다. 향후 10년간 반도체 인력 15만명을 양성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발표됐을 땐 사실상 수도권 대학 증원규제도 풀렸다. 이젠 정보통신기술(ICT)인력들을 갈고리로 긁어가려고 주판알을 튕긴다. 최근 일본 정부가 도쿄대·와세다대 등 수도권 대학들이 디지털 계열학과를 신설하거나 정원을 늘리면 허용키로 하자, 만면에 미소를 띤다. 증원 명분이 더 생겨서다. 지방소멸 문제가 심각한 일본도 수도권 특혜 논란을 무릅쓰고 용단을 내렸다는 점을 부각한다. 대구권 대학들이 동일 선상에서 수도권 대학과 반도체·IT 학과를 신·증설하면 지역 인재들이 향할 곳은 뻔하다. 없는 재정에 갖은 적성으로 키운 인재를 또 헌납해야 한다.
대구처럼 도시쇠락 기운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부산은 '2030세계박람회' 유치에 올인 중이다. 정부와 대기업들의 전폭적 응원과 지지를 받고 있다. 박람회 유치를 부산 경제부흥의 신호탄으로 여긴다. 이참에 용트림을 제대로 할 태세다. 국제박람회기구(BIE)는 다음 달 현지 실사를 거쳐 올 11월쯤 유치지를 결정한다. '오일머니'로 무장한 경쟁도시 '리야드(사우디아라비아 수도)'를 제치면 부산의 옛 위상을 되찾을 수 있다. 국가적 경사에 축하할 일이지만 마음 한구석은 씁쓸하다. 박람회 개최 전(前)에 가덕도 신공항을 조기 개항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불처럼 번질 것이다. 정부는 완전 해양매립이 아닌 섬에 걸친 채 매립해 조기 건설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이럴 경우 개항시기는 TK신공항과 엇비슷해진다. 국비확보 및 알짜 노선 확보전선에 혼선이 야기될 수 있다. 대선공약인 산업은행 본점의 부산 이전도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금융중심도시 위상도 한층 견고해질 수 있다.
'빅 픽처(big picture) 그리기'의 추진동력은 바로 정치력에서 나온다. 실질적 힘은 없고 '보수 종가'라는 상징성만 갖고 있는 대구로선 부러울 따름이다. 정치권은 표심의 향배를 종잡을 수 없는 수도권 민심에 천착하고, 수도권은 이를 잘 활용한다. 부산은 여야 정치권을 함께 아우르며 '밀당'전략을 적절히 구사한다. 양쪽 지원을 다 받을 수 있다.
대구는 경제혁신 씨앗을 많이 뿌리고 싶지만 정치력이 동반된 수도권과 부산에는 밀릴 수밖에 없다. '이슈 메이커' 홍준표 대구시장이 정치인과 행정가 영역을 수시로 넘나들며 목청을 높이지만 혼자론 버겁다. 대구 경제중흥 노력이 확실하게 탄력받으려면 정치 시류(時流)에 편승해 눈치만 보는 정치인을 제척해야 한다. 대구 현안과 연계되면 욕먹을 각오로 덤빌 '전사형 정치인' 부재가 요즘 참 아프게 다가온다. 내년 4월 총선엔 대구에서 싸움닭이 나올 수 있을까.
최수경 (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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