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레이더] 초저금리 혜택의 뒤늦은 청구서

  •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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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22  |  수정 2023-03-22 08:43  |  발행일 2023-03-22 제14면
[경제레이더] 초저금리 혜택의 뒤늦은 청구서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

금융시장의 움직임이 과격하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에 이어 미국 지역은행들의 뱅크런 사태, 크레딧스위스(CS)의 파산 가능성이 부각됐다. 여러 요인이 이유로 제기되지만, 핵심은 제로금리에 안주하던 상황에서 미 연준이 급히 금리를 올린 데 있다.

'금리의 역습'이라는 책이 있다. 원서 제목은 'Price of Time'이다. 시간의 가격이라는 의미다. 이 제목이 책 내용을 나타내기에 더 적합하지 않았나 싶다. 이자율은 결국 시간의 가격이다. 밀 곡식에 시간과 노력을 더하면 수확이 되고, 나무 100그루의 숲에 1년의 시간을 더하면 3~4그루가 더 생겨나 듯 자본에 시간을 더하면 산출이 나오고 건물에선 임대료가 나온다. 이것이 이자의 자연적 근원이다.

문명이 발전하고 자본이 많아지면서 장기적으로 이자율이 하락할 순 있으나 무분별하게 금리를 조정하면 나중에 경제에 문제가 발생한다. 제로금리를 수 년간 이어왔으니 버블이 발생하지 않고서 배길 리가 없다. 케인즈 경제학이 알려줬듯 금융위기 대처, 코로나 대처를 위해 일시적으로 통화 완화정책을 사용할 순 있지만, 우리는 이제 초저금리 시대를 오래 누려왔던 청구서를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앞으로는 초저금리 대신 중금리 시대다.

미국의 강력한 산업정책과 신냉전 갈등 또한 중금리 시대를 지지하는 요인이다. 미국-중국 간 갈등은 세계의 공급망을 뒤흔들었고,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기술을 강력하게 규제하느라 그 여파가 한국에까지 밀려오고 있다. 신흥국 중산층이 성장할 동안 소외받았던 미국 제조업 종사 노동자들에게 고임금 일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미국을 위협할 정도가 된 중국의 국력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의 리쇼어링 정책은 계속될 것이다.

이는 미국의 임금 상승과 인플레이션을 야기한다. 코로나와 금융위기 대응을 위해 급증한 미국 정부부채, 소득 대비 과도하게 오른 자산가격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역시 초저금리를 유지하기 어려운 요인이 된다.

중물가·중금리 세상에서 자산가격은 크게 상승하기 어렵다. 낮지 않은 금리 수준이 지속된다면 어디선가 금융 시스템의 문제, 부채 상환 불가(크레딧)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초저금리가 문제의 원인이 되었으니 초저금리를 오래 끌어온 곳을 걱정하는 게 합리적이다. 일단 일본이 생각나지만 국민들의 부동산에 대한 레버리지 정도는 낮은 편이다. 미국은 이번 SVB 사태에서도 보았듯이 빠른 정책 대응이 가능한 곳이고 레버리지 정도도 낮다. 반면 북유럽은 2012년 이후 제로금리 정책을 지속해왔고 부동산 레버리지도 높아 걱정이 된다.

한국에서는 가계부채 레버리지가 걱정이지만 일단 물가가 고점을 찍고 하락하고 있으며, 한국은행이 안정적인 정책을 펴고 있어 다행이다. 현재 3.5% 수준인 기준금리의 추가 인상 여지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금리가 쉽사리 하락할 것 같지는 않다. 만일 전 세계의 기준금리가 내려간다면 그것은 어디선가 문제가 발생한 다음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높은 금리가 오래 가든 그렇지 않든 만만치 않은 시간이 이어질 것이다. 오랫동안 누린 초저금리의 혜택에 대한 뒤늦은 청구서다.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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