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보는 창] 반발 커지는 팁문화…미국인도 이젠 부담

  • 권영일 경북 수출지원 해외서포터스(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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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5-17  |  수정 2024-05-17 08:13  |  발행일 2024-05-17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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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장수현기자

최근 해외여행에서 돌아온 A씨는 미국 애틀랜타 국제공항에서 집까지 우버(Uber)를 이용했다. 자차를 이용할 경우 공항 주차장 이용료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었다. 무사히 집에 도착한 A씨는 우버에서 날아온 모바일 안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운전기사에게 얼마의 팁을 주겠느냐?'는 메시지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는 없었던 안내문이다.

미국에선 이처럼 이른바 '팁플레이션(Tipflation, 팁+인플레이션)'이 소비자의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미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현재 미국 내에서 부과되는 팁 비용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제 포브스 어드바이저(Forbes Adviser)는 올 상반기 조사에서 응답자 가운데 31%가 팁 비용에 부담을 느끼고, 26%는 '현재 수준이 과하다'고 밝혔다. '당연하다'는 응답자는 23%에 불과했다.

이미 '길트 티핑(guilt tipping, 죄책감으로 주는 팁)' '팁 피로' '팁 크립(tip creep)' '팁 수치심(팁의 인색함으로 인해 생기는 수치심)' '팁플레이션' 등의 신조어가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있다. 여기에 다수의 업소가 최근 테이크아웃 등에도 팁을 요구하면서 소비자들의 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점점 확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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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최근 노팁(No Tip) 식당이 늘어나는 추세다. 사실 미국만큼 팁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도 드물다. 팁을 주지 않는 게 무례한 행동으로 인식될 정도다.

음식점의 경우 보통 점심 10%, 저녁 15% 정도 수준의 팁을 추가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요즘 부쩍 늘어났다. 계산서 금액에 18~25%를 추가하는 것이 다반사다. 게다가 점점 더 많은 소매업체가 단순 서비스에도 팁을 추가하고 있다. 과거엔 식당 혹은 바(Bar)에서 통용됐던 팁을 거의 모든 서비스 업종에서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자동 세차장, 보톡스 시술, 스무디를 만드는 로봇 카페 등에서도 팁을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미국 기업, 특히 서비스 업종은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살인적 인플레이션으로 각종 비용이 뛰는 상황에서 소매업자들은 임금을 올려줄 여력이 부족하다. 대신 직원들이 팁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은 셈이다.

팁플레이션은 고용주 입장에선 '손 안 대고 코 푸는' 좋은 방법이다. 스타벅스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최근 드라이브 스루(차를 탄 채로 이용) 매장에서도 팁을 받는다. 지난해 9월부터 '신용카드 팁 시스템'을 새로 도입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 시스템 도입 이후 신용카드 구매 건수의 거의 절반에서 팁이 포함됐다.

로봇카페·테이크 아웃도 팁 요구
청구액 늘어 18~25% 추가 다반사
미국사회 내서 부정적 시각 확산

비대면 태블릿 결제 시스템 도입
소비자 선택권 제한 교묘히 받아
피로도 누적 평균 팁비율 감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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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객이 매장에서 물건을 산 후 POS시스템을 이용해 결제를 하고 있다. 미국 사회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디지털 팁을 도입했다. 그 결과 기존의 팁 액수가 크게 올라 소비자들의 고민거리로 등장했다.

◆디지털 팁의 '넛지 효과'

팁플레이션의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태블릿 결제' 시스템 확산이다. 과거엔 팁을 보통 현금으로 지불했다. 식사 후 테이블에 지폐를 남기거나 결제할 때 'Tips'라고 쓰인 유리병에 돈을 넣는 식이었다. 신용카드로 결제할 때도 소비자들은 영수증에 팁 액수를 따로 쓰는 것으로 결제 금액이 결정됐다. 그렇지만 요즘 미국에선 대부분 업소가 터치스크린 형태 단말기나 휴대용 태블릿을 사용한다. POS 시스템 때문이다.

이 같은 변화는 코로나 팬데믹 영향이 컸다. 가급적 대면 접촉을 줄이려다 보니 이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당당하게 그리고 교묘하고 끈질기게 팁을 달라고 고객에게 요구한다. 팁을 얼마 줄 건지를 묻고, 고객이 입력을 마쳐야만 결제가 완료되는 식이다.

문제는 이 같은 '디지털 팁' 도입으로 이전보다 팁을 주는 비율도 은근슬쩍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넛지 효과'(Nudge effect,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다. POS 시스템에선 보통 고객의 편의를 위해(?) 객관식으로 팁 비율을 제시한다. 레스토랑의 경우 그 최소비율이 일반적으로 18% 또는 20%부터 시작한다. 최대 30%까지 제시하는 곳도 있다. 물론 업주가 비율을 설정한다. 만약 10%만 팁으로 주고 싶다고 하더라도 입력하는 창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찾기 어렵다. "입력 버튼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그냥 18%를 눌러요"라는 것이 대다수 고객들의 답변이다.

팁 비율 상승보다 소비자를 더 당황스럽게 하는 건 디지털 팁을 요구하는 매장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웬만하면 팁을 안 주고 넘어갔을 매장에서도 디지털 결제 과정에 팁 선택 버튼이 있다. 실제 테이크아웃이 주를 이루는 커피숍이나 샌드위치 가게에서도 무조건 팁 버튼을 눌러야 결제가 끝난다. "'팁 없음'을 선택할 수는 있지만 바로 앞에서 웃는 얼굴로 직원이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쉽지 않다." 대다수 소비자들의 볼멘 반응이다. 구매가가 저렴한 일부 매장은 백분율이 아닌 일정 금액으로 팁 선택지를 제시하기도 한다. 예컨대 3.75달러(약 5천170원)짜리 빵을 사는데 팁을 '1달러, 2달러, 3달러' 중 선택하게 하는 식이다. 비율로 치면 엄청나다.

◆미국 팁 문화의 유래

미국의 팁 문화는 언제부터 유래됐을까. 17세기 영국과 유럽 상류층의 문화였던 팁은 이후 미국으로 넘어왔다는 게 정설이다. 특히 남북전쟁 이후 흑인들이 서비스업에 대거 종사하면서 팁 문화가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낮은 임금을 주는 대신 팁에 의존하게 한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은 임금을 책정할 때 연방정부가 정한 연방 최저임금과 각 주가 정한 주별 최저임금 가운데 더 높은 것을 적용한다. 그런데 미국의 연방 최저임금은 팁을 받는 근로자와 받지 않는 근로자가 다르다. 팁을 받지 않는 일반 근로자는 시간당 7.25달러(약 9천995원), 팁을 받는 근로자는 시간당 2.13달러(약 2천936원)이다.

주별 최저임금도 마찬가지다. 50개 주 가운데 단 8개 주에서만 팁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최저임금을 적용한다. 나머지 42개 주에선 팁을 받는 근로자에겐 더 적은 최저임금을 줄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렇다 보니 팁을 받는 종업원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팁 수준 예전으로 회귀하나

이처럼 인플레이션과 소비자들의 팁에 대한 피로도가 누적되자 최근 평균 팁 비율이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수준으로 회귀하는 조짐을 보인다.

클라우드 기반 POS 시스템 관리 업체인 '토스트'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2분기 소비자들이 식당에서 준 팁 비율은 평균 19.4%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 초기인 2020년 2분기의 19.4%와 같은 수준이다.

평균 팁의 비율은 2021년 1분기 19.9%로 상승했다가 2021년 4분기 19.8%, 2022년 3분기 19.6%, 2023년 2분기에는 19.4%로 내리면서 연이어 감소세를 보였다. 2018년 1분기 평균 식당 팁 비율이 19.7%였던 점을 고려할 때, 최근 소비자들이 물가 상승과 더불어 팁에 대한 스트레스가 급증하면서 팁을 줄인 것으로 분석된다. 디지털 결제 서비스 기업들은 "팬데믹 기간 소비 지출 감소 및 지원금 지급 등으로 소비자들의 재정 상황이 안정돼 팁이 증가했다"며, "하지만 최근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팁 비율이 과거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팁 비용이 하방경직성이 강한 만큼 예전으로 돌아가는 데는 저항선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권영일〈경북 수출지원 해외서포터스(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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