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불멸의 클래식

  • 곽보라 아트메이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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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2-11  |  수정 2025-02-11 08:27  |  발행일 2025-02-11 제17면

[문화산책] 불멸의 클래식
곽보라〈아트메이트 대표〉

문화와 예술은 같은 뿌리를 공유하지만 서로 다른 결을 지닌다. 문화는 집단적 경험과 일상의 축적에서 비롯된 공통의 언어다. 이는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공유되고 소비된다. 반면 예술은 한 개인 또는 소수의 창작자가 심혈을 기울여 탄생시키는 독창적 표현물이다. 따라서 문화는 대중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변화하며 확산되지만, 예술은 오히려 대중과의 관계에서 때로는 독립적인 위치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문화와 예술을 점점 같은 틀에서 평가하려 한다. 대중은 일상처럼 접하는 문화처럼 예술 역시 쉽게 이해되고 접근하기를 기대한다. 이는 문화의 대중성을 예술에도 똑같이 요구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대중성이라는 잣대는 클래식 음악(이하 클래식)의 미래에 대한 우려로 이어진다. 그러나 유한의 삶을 가진 우리가 영원불멸한 클래식의 시간을 감히 논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클래식은 세기를 지나고, 유행을 넘어, 전쟁을 견디고, 심지어 기술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아도 살아남았다. 라디오가 나왔을 때도, TV가 등장했을 때도, 인터넷이 모든 걸 집어삼켰을 때도 클래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AI가 작곡을 해내는 시대가 왔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바흐와 모차르트와 베르디를 듣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클래식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대중성을 쫓아 더 쉽게 만들고, 더 가볍게 소비되게 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팔리게 하고 싶은가? 가슴에 손을 얹고 답해보자. 불행히도 우리는 답을 알고 있다. 모두가 듣지 않아도, 단 한 명이 깊이 듣는 것. 즐기는 소수를 위한 음악으로 클래식은 지금껏 존재해왔다는 것을. 클래식의 위기를 논하는 이들이 정말로 걱정하는 것은, 사실 클래식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줄어드는 현실이 아닐까.

정말 클래식이 대중과 단절되지 않길 바란다면, '새로운 것'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명작의 답습'이 아니라 '초연' '최초' '실험적'이라는 수식어에만 의존하는 나르시시즘이다. 시대의 예술을 창조해야 한다는 외침은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공감할 수 없는 예술의 생명력은 짧다. 클래식은 순간적인 유행이 아니라, 설득을 통해 대중과 만나야 한다. 그리고 설득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클래식의 가치는 시간을 견디는 데에서 증명된다. 우리가 클래식의 미래를 위해 고민해야 할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할 것'이다. 다시 듣고 싶어질 음악,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서사, 수십 년 후에도 감동을 줄 작품이 필요하다. 시간이 내리는 심판 앞에서 당당할 때, 클래식은 스스로 가치를 증명하며 자신만의 속도로 대중을 설득할 것이다.

곽보라〈아트메이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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