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주방에 있는 양념 모두 버리고 ‘천연양념’ 만들어 쓰세요”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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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10-26   |  발행일 2012-10-26 제42면   |  수정 2012-10-26
[힐링푸드를 찾아서] 자연음식연구가 김현희씨의 양념론
20121026
우리 들녘에 나는 온갖 풀과 꽃 등을 이용해 힐링푸드용 각종 양념을 만들어내고 있는 자연음식연구가 김현희씨. 화학조미료 세상에 맞서 천연양념 세상을 만드는 게 꿈이란다.

맛, 그건 어쩜 ‘양념의 본색’인지도 모른다.

그 양념맛에 우리는 너무 일희일비(一喜一悲)하고 있다. 요즘 식당을 차릴 때 가장 신경쓰는 대목은 바로 양념전문가로부터 비법을 전수하는 일. 정작 좋은 식재료는 직접 장악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식재료는 자기 목소리를 낼 겨를이 없다. 화장품 같은 각종 향신료가 주인 행세를 한다. ‘짙은 화장을 한 홍등가의 여인 같은 게 요즘 정체불명의 음식’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착한 음식에 대한 욕구는 1980년대초 경남 함양 출신의 민족의학자 인산 김일훈에 의해 개발된 아홉 번 구운 ‘죽염 신드롬’ 때 일부 감지됐다. 87년 ‘엔도르핀 붐’을 일으키며 등장한 채식 전도사 이상구 박사는 국내에 채식주의자를 양산시켰다. 90년대 사찰요리와 2000년대 약선요리는 ‘고품격 웰빙한식 시대’를 활짝 열었다. 유기농 농산물과 맞물린 유기농 식단은 2000년 들면서 웰빙식단으로 구체화된다. ‘방랑식객’ 임지호의 제철밥상, 이밖에 약선요리, 사찰요리도 요리연구가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결국 이 모든 흐름은 힐링푸드로 귀결되었다.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몸에 좋은 음식을 먹어보겠다는 전국민의 염원이 반영된 것이다.


진짜양념은 ‘藥念’으로
해독·소화 돕는 촉매…
결코 맛제조기가 아니다


쓰고 아리고 떫은 맛은
소금·식초로 빼내고
단맛→신맛→짠맛 順
맛을 내야 조화로워


부추와 궁합 맞는 건
닭보다 오리고기다…
진짜 요리사는 ‘食醫’
식재료의 성질·성분과
사람의 체질 고려해야


소금의 독성 빼기 위해
금 간 항아리에 보관…
된장국엔 감자 등 넣어야
체내 염분 축적 막아줘



지난주 대구에 흥미로운 자연음식연구가 한 명이 지역의 <주>미래창업경영원(원장 강신규)에서 천연양념 만드는 법을 전수한다고 해 만나러 갔다.

<사>수향 자연식생활문화원장 김현희씨(51).

한때 서울에서 환경운동가로 활동했지만 뜻하지 않은 ‘마음의 병’ 때문에 ‘이름없는 여인’으로 살기 위해 산속으로 은둔해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거기서 수많은 풀과 나무를 연구하면서 자연음식 전문가로 회생한다. 그녀는 진짜 요리사를 ‘식의(食醫)’라 부른다. 치료가 아니라 좋은 식재료를 통해 병을 예방하는 사람인 것이다.

자연음식을 위해 온갖 산나물과 들나물의 성질과 성분을 연구했다.

“성질은 드러나고 성분은 분석하지 않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모름지기 요리를 한다는 자는 식재료의 성질과 성분의 함수관계를 식사하는 사람의 체질과 함께 고려해야 된다. 들기름은 볶을 때 맛있고 참기름은 마지막에 무칠 때 사용하면 해독·중화제가 된다. 동물성 기름은 오래 보관할 수 있지만, 식물성 기름은 산화되면 독이 될 수 있으니 잘 밀봉해 서늘한 소금독 같은 데 보관해야 된다.”

초창기에는 전북 모악산 자락에서 풀꽃요리를 하면서 생활했다. 현재는 전북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 야생화 계곡에서 살고 있다. 지황·당귀·울금 등의 산약초 종자도 나눠주며 회원들과 ‘풀빛공동체’를 추구한다. 숲해설가·산야초효소제조사·한국국제음식양생지도사·일식조리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그녀는 요리학원에서는 도저히 접하기 힘든 각종 천연 맛가루·천연 맛소금·효소발효액·천연식초·천연기름·장아찌·전통된장·전통 고추장·전통 간장제조법 등을 전수해주고 있다.

지난 3월 자신의 노하우를 압축해 ‘내 몸을 지키는 천연양념 216선’(하남출판사 간)을 출간했다.

◆ 자연음식은 맛으로 먹는 게 아니다

-자연음식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제철에 난 지역의 천연 식재료를 활용하여 건강상태에 따라 잘 소화되도록 만든 요리다. 어쩌면 ‘하늘밥상’인지 모른다.”

-기존 인공양념은 각종 문제점을 갖고 있다. 현재 국내 양념문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적한다면.

“요즘 화학조미료에 대한 거부가 심해졌다. 그런 소비자를 잡으려고 ‘우리집은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습니다’란 문구를 붙이는 모양이다. 진짜 양념은 천연재료에 있는 각종 독성을 해독하고 소화가 잘 되어 체내 흡수가 잘 되도록 도와주는 촉매인데 이젠 ‘맛제조기’로 인식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식재료의 물성(物性)이 충돌하지 않도록 보조적으로 사용해야 된다.”

- 화학조미료가 등장하기 전 옛사람은 자연에 있는 재료만 갖고 양념을 만들었을 것 같다.

“물론이다. 선인들은 요리할 때 반드시‘법제(法製)’를 했다. 식재료의 기운을 조정하는 것이지 결코 맛을 위한 절차는 아니다. 오히려 선조들은 인공의 맛이 아니라 천연의 맛을 신봉했다. 그래서 ‘오미’(五味·짠맛, 신맛, 단맛, 쓴맛, 매운맛)를 균형있게 다뤘던 것 같다. 그때 사용된 양념은 약의 기운이 들어있다고 해서 ‘약념(藥念)’이라 했다. 쓴·아린·떫은 맛을 소금과 식초로 빼낸다. 쌀뜨물에 담가 거친 것은 끓는 물에 데치거나 삶아 부드럽게 했다.”

◆ 맛을 내는 순서도 있다

- 맛을 낼 때도 순서가 있고 음식간에도 분명히 궁합이 있는 것 같다.

“단맛을 먼저 내고 다음은 신맛, 마지막에 짠맛 순서로 넣어야 조화롭다. 모든 식재료는 고유의 성질이 있다. 예를 들면 성질이 따뜻한 부추는 닭고기보다는 성질이 찬 오리고기와 궁합이 맞다. 식재료간 상생상극, 음식과 사람간 상생상극을 다 익혀야 되는데 재주가 부족해 기도하는 맘으로 살고 있다.”

- 산속에서 새로운 삶의 메시지를 얻었는데 그게 자연음식인 것 같다.

“1999년 어느 날 알 수 없는 마음의 병으로 인해 죽을 심산으로 세상을 등지고 은둔했다. 그러다가 맘을 추스려 귀향해 풀꽃과 의기투합을 했다. 이때 나를 찾던 도시인들에게 고향의 기운과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제철 시골밥상을 차려주었는데 엄청 반응이 좋았다. 백 마디 말보다 한 그릇의 자연음식이 사람들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고 확신을 한다. 난 그 밥상을 ‘풀꽃밥상’이라고 명명했다. 각종 장류도 내가 직접 챙겼다. 공장에서 만든 장류와 식용유도 버렸다. 연근, 멸치, 새우, 표고, 돼지감자, 호박씨, 들깨로 맛소금을 냈다. 누룩도 직접 만들고 아카시아, 엉겅퀴, 보리, 방아풀 등으로 천연식초도 만들었다. 심산유곡까지 갈 필요없이 집 근처 들만 뒤져도 자연음식거리가 무진장하게 널려있었다. 나는 초심(草心)을 딛고 기사회생했다.”

- 천연양념은 어떻게 개발하게 됐는가.

“어느 날 토종 옹기가 사라지는 게 너무 안타까워 금이 간 옹기를 많이 확보하러 다녔다. 금이 간 항아리에 소금을 저장했는데 그 과정에 모든 식재료의 제왕이라고 할 수 있는 소금의 비밀을 하나둘 알게 됐다. 날씨에 따라 소금이 습기를 흡수하고 뿜어내는 걸 보게 됐다. 소금과 함께 쑥을 혼합, 6개월 뒤 열어보니 너무나 근사한 향기가 감돌았다. 설탕을 가미한 효소액보다 더 강력한 기운이 보였다. 그때부터 주방의 양념을 천연의 것으로 교체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보면 ‘주방 양념을 모두 버리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그럼 무슨 양념을 사용하느냐고 물었다. 그렇게 해서 수백가지 양념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소금 가공법을 찾던 중 표고버섯을 말려 프라이팬에 볶은 뒤 먹어봤는데 시중 화학조미료 맛 같았다. 그래서 가루를 내고 거기에 새우·다시마·무·양파·마늘 등도 함께 혼합하니 그 맛이 라면 스프 맛 같았다.”

◆ 왜간장도 직접 빚는다

-각종 장류를 만들 때 자신만의 비법이 있는가.

“일반적으로 된장 담글 때 메주, 소금물, 숯, 고추 등만 넣는데 나는 북어와 다시마 등을 더 넣는다. 나중에 걸러낸 뒤 북어를 건져내서 찢은 뒤 된장과 섞는다. 그 다음에 건진 다시마를 된장 위에 덮는다. 그 다음에 다시마 위에 소금을 뿌린다. 그렇게 하면 직접적으로 된장이 소금에 닿지 않는다. 소금이 많이 녹아내리는 걸 방지할 수 있다. 염분이 부족하면 다시마를 통해 소금을 흡수하게 된다. 간장은 담을 때도 명감나무뿌리(중금속 해독제) 삶은 물과 일반 물을 섞어 소금물을 만든다. 그러면 간장이 아주 투명하게 된다. 간장은 끓이지 않고 바람과 햇볕에 잘 쬐어준다. 대다수 왜간장은 공장용만 사용하는데 나는 직접 빚어서 사용한다.”

- 자신이 견지하는 소금론에 대해 피력해달라.

“소금은 방부제와 조미료의 성질뿐만 아니라 청정과 신성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소금은 짠맛이 나며 염도 12% 이상이면 방부작용을 한다. 또한 생물체의 수분을 강하게 밖으로 내보내는 삼투압 작용이 있다. 이밖에 신맛을 부드럽게 해주며 염도 0.2%의 소금을 사용했을 때는 단맛을 더욱 더 강하게 한다. 소금의 짠맛에 각종 미네랄이 들어가야 식염이 된다. 소금도 독성과 약성이 있다. 마찬가지여서 천일염의 약성은 미네랄이며, 독성은 간수(염화마그네슘)의 비소에서 발생한다. 선조들은 간수의 독성을 빼기 위해 소금을 금이 간 항아리에 넣어 1~3년 이상 보관했다. 햇볕에 소금을 녹여 흐르는 간수를 옹기의 금간 틈으로 내보낸다. 그렇게 해서 고슬고슬하고 쓴맛이 줄어든 소금을 간을 맞추는 데 사용했다.”

-된장국 착하게 끓이는 방법은 뭔가.

“된장국 끓일 때 기본적으로 쌀뜨물을 넣게 되면 물과 된장이 분리되는 걸 막아준다. 몸안에 염분이 축적되는 걸 막아주기 위해선 칼륨 성분이 필요한데 호박·감자·고추·부추 등과 궁합이 맞다.”

-앞으로 더 연구해서 자연음식 관련 개론서를 펴내야 될 것 같다.

“22세기 최고 학문이 자연음식론이 될 것 같다. 가정의학·임상영양학·약선요리·한의학·사상의학·체질학·민족의학·조리학 등을 다 건드릴 수 있어야 진정한 자연음식이 가능할 것 같다. 혼자의 힘으로 절대 불가능하다. 많은 분이 함께 연구를 했으면 좋겠으니 연락을 달라.”

(그녀는 현대요리의 허점을 누구보다 잘 간파하고 있다. 산과 들에 나는 재료로 각종 천연양념을 만든다는 것은 우리 식당주들이 본받아 될 영역인 것 같다. 그래야 힐링푸드 전문식당이 연착륙할 수 있다. 하지만 원가만 따지는 식당주에겐 자연음식은 먼나라 얘기일 따름. 제2·제3의 자연음식연구가가 많이 배출돼 음식만으로 성인병이 치유될 날을 고대해 본다. 더 알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다음 카페 ‘산들꽃바람’을 노크하시라. 문의는 (063)231-1393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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