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효자(孝子)는 없소!
효자를 찾지도 마소. 세상이 괴변해버려 이젠 ‘효병원’만 있소. 고향도 없고 오직 병원만 존재하오. 태어날 때는 신생아실, 죽을 땐 장례식장. 집에서 천수를 누리고 자연사하는 어른들이 사라졌으니 참으로 오호 통재라! 그 시절 삶을 떠올려본다오.
우린 대초원의 양떼처럼 모여다녔소. 있으면 먹고 없으면 함께 굶었소. 굳이 대처(大處)로 나가서 성공할 필요도 없었소. 성공보다 ‘성실’이 최대의 미덕이었소. 그냥 태어난 고향에서 그럭저럭 살다가 모두 예순 안돼 삶을 마감했소.
아이들은 뒷산 가서 땔감 구해오고, 어른이 시키는 일만 하면 됐소. 어른이 몸져 누우면 옆에서 극진히 간호하면 그게 효자의 삶이었소. 병을 치료할 의사도 없었으니 다들 병과 동고동락했소. 그러니 그 시절 병의 종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잖소. 모든 걸 숙명·운명으로 받아들였소. 약이 없으니 자연사는 오히려 대세. 밭을 매다가 잠자듯 세상 떠나는 어른들이 그 얼마나 많았소. 누가 이걸 ‘문맹’이라고 비판할 수 있으리오.
효자는 선택하는 게 아니라 그냥 선택되어지는 것이었소. 누구나 효자였고 누구나 효부였소. 선택의 여지없이 봉양(奉養)문화가 체질화되었소.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자식들은 어른들의 입만 쫓아다녔소. 어른의 입은 그 시절 ‘정보의 보고’였소. 대대로 내려오는 집안 이야기, 옛날이야기, 아플 때는 어떤 약제를 먹어야 하는지, 심지어 새해 운세와 액막이 방법까지 다 알고 있었소. 그 시절 어른들은 통과의례는 물론 세시풍속의 달인이었잖소. 의사, 교사, 목수, 요리사 등까지 겸한 만능 멀티플레이어.
하지만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소.‘자식출세병’이 창궐했소. 시골의 삶이 ‘실패의 삶’으로 보인 거요. 대처로 나가 출세한 자식이 농촌으로 돌아와 부모를 호강시켰다는 얘기가 한반도 방방곡곡을 휘감았소. 너도나도 자식부터 빨리 출세시켜야 한다고 믿었소. 부모는 말린 대추처럼 변해버리고 맹목적으로 키워왔던 그 자식들은 2013년 현재 모천(母川·부모)으로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소. 자식 곁으로 가는 길도 부모로 가는 길도 다 봉쇄됐소.
장남은 여존남비 세상의 전사가 된 마누라한테 전권을 빼앗기고, 직장에선 매일 절벽에 선 느낌이오. 스마트폰교의 맹신도가 된 자식은 오직 자기 출세를 위해 부모의 피를 빨아먹을 태세요.
조선조 유교적 삶을 살아왔던 그 어른(현재 70~80대)들. 단군이래 가장 처참한 최후를 맞고 있소. 할말이 많지만 들을 사람도 없소.
단군이래 가장 호의호식한다는 그 어른의 자식도 세계경제위기에 휘말려 제 식구 돌볼 여력까지 없어졌소. 제 코가 석자. 조상도, 고향도, 까무룩하게 꺼져가는 촛불 같은 부모의 노환도 도무지 실감나지 않소. 부모와 자식간에 형성된 이 냉랭한 불신감! 세월의 잘못이지 누구의 탓도 아니오.
이번 주 위클리포유는 효자없는 세상에서 효가족의 꿈을 다시 꿔본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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