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가의 술과 음식 이야기 .12] 경주 회재종가 가양주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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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1-27   |  발행일 2014-11-27 제18면   |  수정 2014-11-27
국화 술 한잔에 북어 보풀·육포·집장 ‘한상’…무엇이 더 필요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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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재 이언적 종택의 별당 건물인 무첨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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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재종가 종부가 차려낸 가양주 술상. 가양주는 재래종 국화 줄기나 솔잎을 사용해 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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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재종가 술상에 오른 북어 보풀. 맛이 일품이다.



여름엔 솔잎, 겨울엔 국화로 술 빚어
제사때 쓴 북어포로 만든 북어 보풀
무·가지·부추 등 속재료 섞은 집장
종가 내림음식으로 지금까지 이어와
육포는 추운 날에 말려야 제 맛


조상을 받들고 손님을 접대하는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은 종가의 대표적 덕목이다. 이 봉제사접빈객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술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 술은 종가에서 직접 빚는 가양주를 사용했다. 특히 조상의 제사상에 올리는 제주는 각별한 정성을 다해 빚었다.

종가마다 이런 가양주가 있었고, 그 술맛과 안주는 가문 안주인의 자존심과 품격을 드러내는 요소 중 하나였다. 선비들이 종가를 방문하며 이런 가양주 맛을 보는 즐거움은 각별했을 것이다.

삶의 환경 변화로 가양주 전통은 대부분 맥이 끊긴 것이 현실이나, 최근 들어 종가 곳곳에서 다시 가양주를 부활시키고 있다.

지난 9월 하순 경주 양동마을의 회재(晦齋) 이언적(1491~1553) 종가의 종택인 ‘무첨당(無添堂)’을 찾아 가양주 이야기를 들었다. 이지락 종손과 대화를 나누면서 종택의 별당(사랑채) 마루에서 맛본 가양주 맛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무첨당’은 회재 이언적의 맏손자인 이의윤의 아호로, ‘조상에게 욕됨이 없도록 한다’는 의미다. 이 아호가 종택 별당의 당호인데, 종택 이름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손님을 맞는 사랑채이자 회재 불천위제사 제청 등으로 사용되는 공간이다. 무첨당(사랑채) 마루에 걸린 ‘좌해금서(左海琴書)’(석파 이하응 글씨) 편액도 눈길을 끌었다. 고고한 영남(左海)의 선비(琴書)가 거처한 곳이라는 의미로 종손은 풀이했다.

청명한 가을날, 막바지에 이른 배롱나무 꽃의 빛깔이 더욱 고와 보이는 마루에 앉아 간단한 주안상을 마주했다. 국화로 빚은 청주에다 안주는 북어 보풀과 집장, 육포였다.

술 빛깔은 약간 탁해 보였으나, 술맛이 정말 좋았다. 한 잔만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두 잔 반을 마셨다. 안주도 각별히 맛이 좋았다. 맑은 가을날 멋진 풍광의 정자에 앉아 좋은 술을 한두 잔 마시니, 정말 겨드랑이에 바람이 일면서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국화와 솔잎으로 담근 회재종가 가양주

회재종택에는 이지락 종손과 신순임 종부가 아들 둘과 함께 살고 있다.

회재종가에는 가양주가 1년 내내 끊이지 않는다. 회재 불천위제사를 비롯한 제사가 이어지고, 종택을 찾는 손님들도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종부가 술을 담그는 데 있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정성이다. 술 담그는 날은 초하루를 피하고 ‘손 없는 날’이라는 그믐으로 잡는다. 술 재료는 봄과 여름에는 솔잎을 넣고, 겨울에는 국화를 사용한다.

국화는 서리가 내리기 전에 재래종 국화인 야생국화를 거둬들여 갈무리해 두었다가 사용한다. 국화꽃은 따로 따서 모아 말려두었다가 제사에 쓰는 전을 구울 때나 국화차로 쓰고, 술을 담글 때 사용하는 것은 국화 줄기다.

국화청주 담그는 법은 이렇다. 누룩을 빻아 햇볕에 말리고, 하룻밤 불린 찹쌀로 가마솥에 고두밥을 찐다. 밥이 식는 동안 가마솥에 국화 줄기와 약수를 넣고 달인다. 달인 물은 자연스럽게 식도록 둔다. 준비된 재료인 누룩과 고두밥, 국화 달인 물을 함께 넣고 버무려 치대면 뽀얗게 물이 나오기 시작한다. 차나락 짚을 태운 연기로 소독한 항아리에 버무린 재료를 넣고 기다리면 된다. 3일 정도 지나면 술이 본격적으로 발효되는 소리가 들린다. 술이 다 익는 데는 여름 술은 1주일, 겨울에 담그는 술은 보름 정도 걸린다. 다 익으면 술을 떠서 서늘한 곳에서 더 숙성시킨다.

이 술의 알코올 도수는 12~13도 정도.

회재종가의 가양주는 언제부터 빚기 시작했을까. 회재 이언적이 부친의 제사를 지낼 때부터 가양주를 빚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술 빚는 재료나 방법이 지금과 똑같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종부에 의해 술 빚는 법이 전해 내려왔으므로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술 안주인 북어 보풀과 집장

집장과 북어 보풀은 경북지역 종가 곳곳에서 해 먹어 온 전통 음식이다. 회재종가에서도 내림음식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회재종가 집장은 콩가루와 통밀가루, 보릿가루를 작은 덩어리로 만들어, ‘따붓대’라 불리는 쑥 비슷한 풀을 깔고 그 위에 말려둔다. 필요할 때 말린 덩어리를 가루로 만들어 찹쌀풀과 물엿을 넣고 소금간을 해 버무린다. 여기에 무, 가지, 부추, 박, 다시마, 버섯, 열무 등 8가지 속재료를 준비해 모두 넣고 섞는다. 다음은 삭히는 과정이다. 옛날에는 두엄 열기에 삭히기도 했는데, 지금은 전기밥통에 넣어 36시간 정도 발효시킨다. 발효가 끝나면 큰 솥에 넣고 끓여서 한 번 먹을 만큼의 양으로 나눠 보관한다.

북어 보풀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제사 때 쓴 북어포를 모아 베보자기에 싸서 두드려 부순다. 가루가 어느 정도 나면 고운 가루를 모아 무친다. 천일염을 볶은 뒤 곱게 갈아 설탕과 참기름 등과 함께 넣어 무친다.

육포를 만들려면 우선 북어대가리, 생강, 마늘 등을 넣어 달여놓은 물에 배즙, 양파즙을 넣고 집간장으로 양념을 만든다. 설탕과 소주를 넣은 물에 넓게 뜬 쇠고기(홍두깨살)를 이 양념에 적신 뒤 잘 펴서 햇볕에 말린다. 하루 정도 말려서 꼬득해지면 거둬들여 잘 편 뒤 다시 말린다. 추운 날씨에 얼렸다 말렸다 해야 제맛이 난다.

종부는 시를 쓰고 그림도 그리는 작가이기도 하다. 수시로 종가생활을 소재로 작품을 하고 있다.

‘대구 보푸름’이라는 시다.

‘시렁 위 뻐드렁하니 누운 대구 한 마리/ 바닷물 한 방울 없이 지느러미 독기 모으고/ 켜켜이 쌓인 먼지 속 가려움 몰라/ 바가지 탕 담가 뿌득뿌득 때 씻기니/ 바다냄새 맡았는가/ 제법 도톰해지고 꼬리 서기에// 푹 적신 삼베 보자기로 둘둘 말아/ 서답돌 올려놓고/ 난타 공연 서너 판 벌리고 나니/ 차분히 가라앉은 대구 속/ 놋숟가락으로 살살 살점 긁어/ 참기름 설탕 소금 골고루 발라/ 주안상 올리면/ 보들보들해진 바다/ 손님 혀끝에서 노는데// 엄마는 반가음식인데 안 배운다고/ 배워 남 주냐고 닦달이시었는데/ 믹서기 단추만 누르면 커트되니// 이 무슨 횡재’

◆식사 전 간장 한 숟갈을 먼저 먹었다는 회재 이언적

회재 이언적이 술이나 음식, 건강 등에 대해 남긴 글은 찾아보기 어려우나, 식사 때 밥을 먹기 전 반드시 간장을 먼저 먹었다고 한다. 종손의 말이다.

이언적이 남긴 글 중 술에 대한 언급이 있는 ‘이로움을 말하는 입이 나라를 망친다(利口覆邦家賦)’라는 글이다.

‘간사하면서 이익을 탐하는 입에 감추어진 것이 사나운 짐승이며 독약이구나. 깨뜨리고 쪼개는데 이르지 않음이 없도다. 처음에는 달콤하고 겸손한 말로 시작하므로 두려워할 만한 자취가 없으나, 정치를 어지럽히고 법도를 무너뜨리는 데까지 이르도다. 재앙이 끔찍함을 비로소 깨달았더라도 뉘라서 왕위가 뒤집어질 것을 헤아리리오. 쥐 이빨에 굴이 파이듯 거기에서 재앙이 오는도다. 세 치의 달콤한 혓바닥으로 절절하게 말 꾸밈이여. 네 필의 말로도 따르지 못하도다. …

잠깐 임금 곁에 붙으면 달기가 아주 감주 같아 쉽게 임금 귀에 들어가서 옳고 그름이나 선과 악이 뒤바뀌고, 흰 것과 검은 것,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이 뒤집히며, 어질고 밝은 사람들을 붕당이라 모함하고, 바르고 곧은 사람이 간사하고 거짓된 사람이 되어 봉황과 참새도 구분 못하는데, 누가 밝은 구슬과 율무 알을 살피겠는가.

임금 마음이 이렇게 현혹되면 나라 정치가 무너진다. 잘 걸러진 술이 사람 입에 닿음이여. 그 맛을 좋아하면서도 취하는 줄 몰라서 마침내 쇠하고 어지러워 구할 수 없게 되니 위태로워 곧 죽게 될 것이다. …

거듭 말하노니 간사한 입을 가진 사람은 혀가 칼날 같아서 도를 무너뜨리고 이치를 훼손하며 임금을 어둡고 망령되게 하니, 환란이 싹트는 것이 여기에서 말미암지 않으리오. 경계하라, 임금 된 자여. 입에 단 말을 하는 자를 버리는 데 의심하지 말지라. 한번 그 입이 열리면 나라가 망할 것이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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