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대결] 아메리칸 울트라·원 와일드 모먼트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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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8-28   |  발행일 2015-08-28 제41면   |  수정 2015-08-28

아메리칸 울트라
동네 편의점 알바생이 CIA 최정예 스파이라니…

20150828

마이크(제시 아이젠버그)는 여자친구 피비(크리스틴 스튜어트)와 결혼하는 것이 인생 최대 목표인 편의점 알바생이다. 어느 날 의문의 여자가 찾아와 도통 알 수 없는 주문을 남기고 간 후 마이크는 괴한들의 습격을 받는다. 신기한 건 그들의 무차별 공격에 너무도 능숙하게 대처했다는 사실. 무기 없이도 일당백으로 맞설 수 있는 전사로서의 자질이 그의 내면에 깊이 잠재되어 있던 것이다.

하지만 CIA의 실세로 떠오른 예이츠(토퍼 그레이스)에 의해 마을 전체가 갑자기 폐쇄되고, 위기에 처한 마이크는 편의점을 찾아왔던 의문의 여자로부터 자신이 CIA 일급 기밀 프로젝트에 의해 만들어진 최정예 스파이였다는 믿지 못할 사실을 알게 된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약물 실험 모티브
제시 아이젠버그·크리스틴 스튜어트 주연
B급 정서 물씬 풍기는 코믹 액션물


MK 울트라 프로젝트.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이 서로의 군사 기밀을 빼내기 위해 자국에 잠입한 스파이들의 자백을 받아내고자 환각을 일으키는 약물을 사용한 실험이다. 그들은 이 실험을 부랑자부터 헤로인 중독환자, 심지어 평범한 시민들까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진행시켰다. 약물로 일반인을 초능력자와 같은 수준으로 키워내겠다는 허황된 야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후 갖가지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실험은 30년 만에 중단되었다.

‘아메리칸 울트라’는 이를 모티브 삼아 B급정서가 물씬 풍기는 코믹 액션물로 풀어간다. 소재와 형식으로만 보면, 최근 할리우드 스파이물의 흥미로운 변주를 보여준 ‘킹스맨’과 ‘스파이’의 연장선에 있다. 즉 제임스 본드나 제이슨 본, 에단 헌트 같은 프로페셔널한 요원의 모습이 아닌,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문제적 인물이 주인공이라는 얘기. 다만 마이크는 제이슨 본처럼 일급 기밀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최정예 스파이였고, 그동안 기억이 삭제된 채 살아왔다.

영화는 봉인돼 있던 그의 액션 세포를 깨우게 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을 리듬감있게 담아간다. 미국 10대 청소년들의 지상 최고의 파티를 광란의 소동극으로 담아낸 니마 누리자데 감독의 전작 ‘프로젝트 X’(2011)를 장르적으로 좀 더 확장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 과정은 기존 블록버스터 첩보물과의 차별점으로도 볼 수 있는데, 독특한 캐릭터와 색다른 유머의 조합은 화려함이나 스릴러적 긴장감 대신 기발하면서도 톡톡 튀는 액션과 유머로 스타일리시하게 이야기를 채워간다.

‘아메리칸 울트라’에 대한 기대와 관심은 무엇보다 할리우드 스파이 계보에 반하는 제시 아이젠버그와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조합일 듯하다. ‘어드벤처랜드’(2009)에서 이미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멜로, 액션, 코미디를 함축한 이 영화의 장르를 성공적으로 아우르는 환상의 ‘케미’를 자랑한다. 특히 액션 전사와는 한참 동떨어져 보였던 제시 아이젠버그가 숟가락, 프라이팬, 통조림, 컵라면 등 일상용품을 활용해 선보이는 액션은 기발하고 짜릿하다. 마이크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크리스틴 스튜어트 역시 색다른 카리스마로 남심을 자극한다. 규모의 화려함보다는 두 사람의 특별한 로맨스와 액션에 방점이 찍혀 있는 새로운 스타일의 스파이 영화다.(장르:액션 등급:청소년 관람불가)


원 와일드 모먼트
친구의 아버지를 사랑하게 되는 발칙한 17세 소녀

20150828

앙투안(프랑수아 클루제)은 절친인 로랑(뱅상 카셀)과 함께 휴가를 보내기 위해 각자의 딸 루나(로라 르 란)와 마리(앨리스 이자스)를 데리고 코르시카 섬으로 향한다. 이곳에는 앙투안이 유년기를 보낸 별장이 있다. 이혼하고 오랫동안 혼자서 살아온 로랑과 아내와의 관계가 좋지 않은 앙투안은 고즈넉한 이곳의 풍광에 만족해한다. 하지만 아빠들과 달리 10대인 딸들은 이곳이 영 탐탁지 않다. 전화는 안 되고, 가족묘가 있는 정원에, 방안에는 죽은 쥐까지 있는 최악의 휴가지다. 그런 두 딸에게 유일한 위로는 밤마다 해변에서 열리는 클럽 파티에 가는 일이다. 마침 교내 킹카가 코르시카 섬에 와있다는 것을 알게 된 마리와 루나는 매일 밤마다 클럽으로 향하고, 그 과정에서 루나가 로랑을 짝사랑하게 되면서 비밀스러운 소동까지 벌어진다.

친구의 아버지를 사랑하게 된 열일곱 소녀. 이쯤되면 ‘원 와일드 모먼트’는 금지된 사랑을 향한 파격과 불륜의 드라마로 읽히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가족과 친구 간의 소통과 우정이라는 관계맺기의 과정으로 가볍게 풀어간다.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루나의 행동은 당돌하고 발칙하다. 아빠인 앙투안에게는 한없이 귀여운 딸이지만 스스로는 성숙하고 사랑에 대해 통달했다고 생각하는 그녀다. 또래와의 만남을 가지려는 마리에게 “그들은 정신 연령이 낮아. 말이 통하고 배울 게 있고 다정한 남자가 최고”라며 자신의 이성관을 당당히 밝힌다. 문제는 루나가 사랑하는 상대가 아빠의 절친인 로랑이라는 점이다. 로랑 역시 술에 취해 루나의 유혹을 거절하지 못하는 실수를 범했다.


섬에서 휴가를 보내는 두 절친과 딸
파격과 불륜의 드라마가 아닌
소통·우정의 관계맺기로 풀어나가


코르시카 섬으로의 힐링과 우정 여행으로 출발한 영화는 이후 루나의 돌발적 행동으로 야기된 아슬아슬한 관계와 심리에 천착한다. 로랑을 향해 거침없이 애정을 표현하는 루나, 그런 루나의 행동에 진땀을 흘리는 로랑, 두 사람의 관계에 화가 난 마리, 그리고 이 사실을 모른 채 딸의 마음을 아프게 한 남자가 누구인지 밝혀달라고 로랑에게 부탁하는 앙투안 등 네 인물의 상황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

‘원 와일드 모먼트’는 고(故) 클로드 베리의 가족 코미디 ‘광기의 순간’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작의 뼈대인 마흔다섯의 남자가 절친의 딸과 스캔들이 벌어진다는 설정을 제외하면, ‘원 와일드 모먼트’는 원작에서 보여준 파격적 광기보다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에 주목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그 유약한 순간을 유쾌한 소동극으로 치환한다. 부담스럽지 않게 적당히 귀엽고 적당히 가벼운 코믹극으로 말이다.

두 가족의 비밀 가득한 휴가의 배경이 되고 있는 코르시카 섬의 풍광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대자연의 웅장함과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는 에메랄드 빛 바다, 푸른 하늘, 그리고 드넓게 펼쳐진 백사장은 여름 휴가의 아쉬움을 달래줄 만큼 눈부시다. 여기에 관록의 배우 프랑수아 클루제와 뱅상 카셀의 첫 연기호흡, 그들에게 주눅들지 않는 당찬 모습을 보여준 신예 앨리스 이자스와 로라 르 란의 매력 대결도 인상적이다. (장르:드라마 등급:청소년 관람불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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